▲박상천 시인의 시집
나무발전소
시인의 아내가 살아생전에 담근 김치가 있습니다. 그냥 거기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김치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 김치, 평생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오래 보관해도 몇 년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무리 아껴먹으려고 해도 김치통은 쑥쑥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약간의 김치. 시인은 이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입니다.
'딸아이와 나는 저녁상을 차려 / 김치찌개를 가운데 두고 밥을 먹었습니다. /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같은 김치찌개를 사이에 둔 부녀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제삼자인 저도 겨우 눈물을 참고 있는데. 시인은 후회한다고 말합니다. 솔직한 마음을 '그냥 거기 둘 걸, / 정리하지 말 걸, / 자꾸만 후회가 되었습니다'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후회가 전부이겠습니까.
누군가는 이 후회의 감정을 읽으며 '부질없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부질없는 짓입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이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제 시 '첫'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첫 아이를 잃었을 때 십 년만 견디자 생각했다. / 앞서 떠나보낸 사람들처럼 / 누군가를 가슴에서 지우는 일은 딱 십 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 당신은, / 사랑이 그리 쉽게 떠나갔는가?'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나도 그 사람처럼 잊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나 또한 그 사람처럼 잊힌다면, 누가 내 사람을 기억해 줄 수 있을까요. 내가 꾸역꾸역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먼저 떠나간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기억'과 '호명'입니다. 내가 그를 기억하는 한,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한, 그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 내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와 시집을 통해서 시인이 아내를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시인뿐만이 아니라 이 시와 시집을 읽어 줄 많은 독자의 가슴속에 살린 것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박상천 시인은...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시집으로 『사랑을 찾기까지』, 『낮술 한잔을 원하다』 등이 있다. 한국시협상,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를 그리다
박상천 (지은이),
나무발전소, 2022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공유하기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시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