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고독한 미식가>한 장면. 일본 현지 식당의 메뉴판은 은유적인 한자 표현이 많고 훈음과 독음이 뒤섞여 있어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이 읽기에는 매우 어렵다.
TV Tokyo
처음 일본에 가면 당황스러운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좌우가 뒤바뀐 도로 방향, 동전 지갑이 필수인 현금 선호 문화, 너무 복잡한 지하철 노선, 그리고 일본어 초보들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망한 메뉴판.
많은 이들이 메뉴판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고 현지를 여행하는데, 관광지가 아닌 지역을 여행한다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음식을 주문하게 되는 우울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특히 메뉴가 한자로 적혀있다면 더욱 그렇다. 한자를 아는 이에게조차 일본 식당의 메뉴 읽기는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다(손으로 쓴 메뉴판은 번역 앱이 안 통할 때도 있다). 일본은 한자를 독음과 훈음, 두 가지로 구분해 읽는 데다 음식 명칭이 은유적인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그 은유적인 표현이 와닿는 것이라면 아! 하면서 무릎이라도 쳤을 텐데, 그럴 리가.
외국인에게 쉽지 않은 일본어 음식 이름들
한 번은 무심코 들어간 식당에서 돈승(豚勝)이라는 한자를 보고 '이게 뭔 메뉴야?' 당황했던 적이 있다. 돼지가 이겼다고? 누구에게? 무엇을? 무엇으로? 거기엔 동사만 있을 뿐 그 어떤 수식어도 없었다. 사실 일본에서 돈가스는 とんかつ 또는 豚かつ처럼 히라가나로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체 왜 이 가게는 굳이 한자로만 돈가스를 표기했던 걸까? 돼지고기가 들어간 메뉴는 맞는 것 같은데. 도대체 돼지가 뭘 어떻게 해서 누구를 이겼단 말인가. 그래서 이긴 돼지가 무슨 음식이 됐냐고!
나중에서야 그게 돈가스의 한자 표현이라는 걸 알았다. 그 식당의 추천 메뉴가 돈가스라는 건 당연히 몰랐다(당시는 번역 앱이 보편화되기 전인 2015년이었다). 결국 히라가나로 적힌 메뉴를 간신히 읽어가며 알 수 없는 메뉴 하나를 주문했다. 굴튀김이었다. 김치찌개가 맛집인 곳에 가 기어이 된장찌개를 시킨 꼴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일본어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나 볼 걸.
사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참치회를 간장양념에 재워 밥 위에 올린 데카동은 (鉄火丼) '철화'로 읽히는 한자 때문에 철판구이인 줄 알고 맛도 보지 못했고, 튀김 덮밥인 텐동(天丼)은 하늘=조류=닭고기라고 지레짐작한 탓에 주문했다가 튀김만 잔뜩 먹고 나왔다(텐동과 오야코동을 혼동한 결과다).
우연히 알게 된 일본요리 '냉노'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