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전용 수영장에서 나가라"…흑인 형제 집단 폭행, JTBC 유튜브 사건반장 화면 캡처
JTBC
이와 비슷한 일이 며칠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일어났다. 백인들이 백인 전용이라면서 수영장에 들어온 흑인 소년들을 폭행한 것이다. 아직도 이런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현지 사회에서는 큰 공분이 일었다고 한다.
그림책 <1964년 여름>과 놀랍도록 닮아있는 기사를 접했을 때 사실 그리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인종 차별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1960년대보다는 법과 의식의 측면에서 나아졌다고는 하나 변화된 사회 속에서 차별은 보다 복잡 미묘해졌다.
21세기라고 인종 차별이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쉽게 없어질 것 같지도 않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해외여행을 떠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물론 그전에도 아시아 여행자들은 여러 인종 차별을 당했다. 나에게도 기억나는 몇 가지 사건이 있다.
한번은 영국의 한 길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눈덩이가 날아왔다. 낄낄거리다 이내 사라진 사람들. 나는 뭐라고 대꾸할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아일랜드에 머물고 있던 한 친구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가 던진 달걀을 정통으로 맞았다. 아픔과 놀라움보다 무서워서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기차 안에서는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하기도 했다. 바로 승무원으로부터다. 백인 남자 승무원은 내 친구가 실수를 하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이는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오스트리아철도청 SNS 계정에 항의글을 올렸다.
어디에서 무슨 연락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잠시 뒤 그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기차에서 내릴 땐 캐리어까지 손수 옮겨주며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물론 그의 사과가 진심이라고 믿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실 유럽에 가보기 전까지 인종 차별은(당하는 입장에서의)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하는 편에 서보니 이렇게 억울하고 황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런 일을 겪은 후 나는 인종차별에서 떳떳해졌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대다수는 피해자보다는 여전히 가해자와 가깝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는 한국에 만연한 '다문화' 차별에 대한 여러 예시가 나온다. 한 중학생은 "종례 뒤 선생님이 '다문화 남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도 이름이 있는데 '다문화'로 부르셨다. 선생님이 내가 마치 잘못을 했다는 듯 말씀하셔서 큰 상처를 받았다"라고 했다.
저자는 "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햄버거나 영화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라는 아서 골드버그 대법관(1964년 민권법에 반발하여 소송을 건 백인에게 기각 판결을 내린)의 판결문을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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