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사다리코치님이 훈련 준비를 하고 있다.
이지은
그렇게 날아다니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진로방해만 하다가 얼결에 공을 잡았는데, 17명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지면서 무서워서 공을 아무렇게나 내던졌고, 누군가 "풋" 하고 웃는 소리를 들어버렸다.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지만 마초 주장의 "중간에 가면 죽인다?"던 그 말이 생각나 도망도 못 갔다.
지금은 '택배 크로스'를 골로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어찌저찌 전반전을 견뎠고, 쉬는 시간. 벤치로 가니 나와 함께 뛴 아저씨 5명은 기진맥진했다. 누구는 햄스트링이 올라오고 누구는 허벅지가 올라왔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당연하지, 6대 5로 대결했으니. 반면에 나는 주로 서 있는 역할을 맡아서 숨이 하나도 차지 않았다. 그때 같은 팀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못해도 좋으니까 자신 있게 해요."
"아, 네네. 그렇죠. 머리로는 압니다."
그 아저씨는 나를 한번 쓱 보더니 구석으로 끌고 가 속성으로 패스, 드리블, 슛을 가르쳐주고 후반전에 재투입시켰다. 알고 보니 체육교육학과 출신이라고, 아동과 여성도 축구 가르친 적 있다고 했다. 다음 주에도 나온다면 자기가 콘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따뜻하고 고마운 제안인데, 당시에는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두 번째 투입 이후부턴 우리 팀 아저씨들이 나보고 내려오지 말고 골대 앞에 붙어 있으라고 했다. 심지어 한 골 먹히고 중앙 라인에서 시작할 때도 나보고 "내려오지 마요!"라고 소리쳤다. 아저씨들이 배달해준 공은 내 앞에 착착 와서 붙었다. 내가 드리블을 할 때 앞 수비가 잠시 난감해하더니 한 번에 빼앗아버렸는데, 경기장 안팎에서 그를 향해 온갖 야유가 쏟아졌다.
누군가는 그에게 "막지 마! 막지 마아! 씨O!" 하고 짧은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물론 그가 막지 않았음에도 나는 똥볼을 찼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공을 가지면 경기장 내 모든 사람이 일시 정지했다. 덕분에 두 골을 성공시켰고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날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그 오픈 채팅방에 사과 인사를 건네고 꽁지 빠지게 퇴장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분들에게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나 이후로 '여성 회원은 못 받는다'가 회칙에 새로 올라갔을까? 축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이라면 내 발 밑에 착착 배송되는 그 택배 크로스를 멋지게 골로 성공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얼마 전 포털사이트에 해당 팀 이름을 검색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혹시 그날 같이 공 찼던 축구팀 여러분, 저 기억난다면 연락 주십시오. 이번엔 도망가지 않을게요. 정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