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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향세 성장의 동력, '이것'의 등장

일본 고향세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한 민간 플랫폼

등록 2023.03.09 10:44수정 2023.03.0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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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향세와 한국 고향사랑기부제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지난 기고(관련 기사 : 일본에서의 고향세 경험을 논하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장 큰 차이는 '민간과의 협력'이다. 제도의 목적이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지역 활성화를 꾀하는 것인 만큼, 일본 총무성은 각 지자체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민간과 적극적인 협력을 하여 제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민간의 파트너는 '민간 플랫폼'이다. 2008년 일본에서 고향세 제도가 처음 시작되고 나서 첫 5년 간은 제도를 활용하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낮은 기부접근성 때문이다. 1) 시민들이 자신이 기부하고 싶은 지자체에 연락하면, 2) 지자체에서 기부신청서를 보내준다. 3) 해당 신청서를 작성해서 우편으로 지자체에 보내면, 4) 지자체에서 기부금납부서를 보내준다. 5) 그러면 기부금납부서를 우체국 등 지자체에서 지정한 금융기관에서 납부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몇 번에 걸쳐 우편을 주고받는 수고로움이 탓에 제도 활성화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 초기 단계에서는 지금처럼 답례품을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 기부에 대한 감사 의미로 지자체에서 자랑할 만한 특산품을 보내주는 형식이었기에,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기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처음 '후루사토초이스'라는 민간 플랫폼이 등장했다. 기부자들은 이 플랫폼 내에서 다양한 지자체 정보를 확인하고, 온라인으로 집에서 손쉽게 기부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부접근성이 높아지면서부터 고향세는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민간 플랫폼이 일본 고향세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지자체와 기부자 사이를 연결해준 민간 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는 단순히 수수료를 받고 홍보를 대행해주는 사이트가 아니다. 이 플랫폼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트러스트뱅크는 일종의 사회적기업으로, 고향세 확산과 올바른 정착을 목적으로 지자체와 민간이 가장 잘 협력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했다. 바로, GCF(Government Crowd Funding)라는 '지정기부' 형식의 정부가 주도하는 크라우드펀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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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민간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가 시행하는 민간 지정기부형 고향세 '거버먼트크라우드펀딩(GCF)'의 실적. 현재까지 199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시행되었고, 560여 개 이상의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모금금액은 약 145억 엔에 달함 ⓒ 일본 후루사토초이스 GCF페이지


고향세에서 모금 주체는 지자체이지만, 지자체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역과제를 전문성을 가진 민간단체를 지정·위탁하여, 모금, 답례품 발송 등 모든 업무를 분담해서 시행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통해 지자체는 비교적 손쉽게 지역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민간은 이 제도를 통해 스스로 지역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자발적으로 지역활성화에 참여하고 기여하게 된다.

기부자들은 명확하게 본인의 기부금의 사용처를 알 수 있고, 보다 긴밀한 형태의 피드백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나의 기부가 지역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는 지속적인 기부로 이어진다. 단순한 일회성 기부가 아닌, 지역과의 유대감을 형성하여, 자연스레 지역과 친밀도를 높이는 '관계인구'로 자리잡는다.


현재 일본에서 지정기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다양한 지자체들이 민간 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를 활용해 시행한 프로젝트는 2000여 개로, 모금된 지정기부금액은 지금까지 총 1440억 원에 달한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비영리법인 페어트래블재팬(FairTravelJapan)도 후루사토초이스를 통해 두차례 모금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한국에서도 진행했던 공정여행의 확장판이었다. 일본 내 재해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연이 풍요로운 일본 히로시마현 진세키고원에서 치유캠프를 진행하는 '나눔여행' 프로젝트, 다른 하나는 지역 내 빈집을 활용하여 커뮤니티호텔을 설립하는 '시이노모리' 프로젝트이다. 두 프로젝트로 총 1500만 원을 모금했고, 이 사업을 진행하여 만든 실적으로 다른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고향세 모금액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고향세가 사업 확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준 셈이다.

크라우드펀딩을 준비하고, 모금함 개설 및 홍보하는 과정에서 민간 플랫폼의 존재는 큰 힘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40여 개의 고향세 민간 플랫폼이 존재한다. 각 플랫폼마다 장단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지자체도 기부자들도 다양한 선택지 중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지정기부(GCF)' 방식의 고향세는 후루사토초이스가 가장 먼저 시도했고, 활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역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춘 우리 프로젝트에는 적합한 플랫폼이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민간 플랫폼들이 등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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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패어트래블재팬)이 실시한 고향세 지정기부 프로젝트의 모금함 모습. 총 120만 엔의 기부금으로 재해지역의 아이들에게 나눔여행을 선물할 수 있었음 ⓒ 일본 후루사토초이스 (한글자동번역 적용)

 
지자체 입장에서도 민간 플랫폼은 업무 과중화를 방지하고, 기부를 활성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패어트래블재팬이 속한 일본 히로시마현 진세키고원에서는 '마을만들기추진과'에서 매년 상반기에 지정기부대상단체 신청을 받는다. 정해진 서식은 단체의 간략한 소개와 진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 예산, 전년도 사업실적(시행한 내용 및 결산) 정도다.

이 내용만 잘 작성하고, 나머지 부수적인 각종 증명서, 정관, 결산내역 등의 추가서류를 제출하면 지정기부단체로 고향세 모금을 시작할 수 있다. 서류들은 법적으로 등록된 비영리단체라면 응당 갖추고 있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에 준비가 전혀 어렵지 않다.

이렇게 상반기에 지정기부대상단체를 선정한 이후, 선정된 민간 단체들은 민간 플랫폼과 협업하여 모금 프로젝트를 개설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고향세 제도에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규칙들이 잘 지켜지는지에 관한 점검만 진행한다. 복잡다난한 고향세의 업무 부담에서 벗어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행정안전부에서 운영 중인 종합정보시스템 '고향사랑e음'에서만 기부가 가능하다. 제도 시행 초기부터 '고향사랑e음' 사용에 대한 불편함과 기부된 금액이 어떻게 사용될 지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 점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민간 플랫폼의 등장은 제도 활성화의 측면과 아울러 기부자 편의성 증대, 행정의 부담 경감이라는 측면에서 필연적이다. 하루 빨리 한국에서도 다양한 민간 플랫폼들이 등장하여 기부가 늘어나고 지역을 살리는 제도 본연의 취지가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고향사랑기부제 #일본 고향세 #지정기부 #민간 플랫폼 #패어트래블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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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 지역재생 관련 경험 10년차 활동가. 현재 일본 히로시마현 진세키고원에 거주하며 일본 고향세를 활용하여 소멸위기지역의 지역활성화 사업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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