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한성룡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가 별일 없이 집으로 되돌아온다면 다행스러운 후일담으로 남게 되지만, 반대로 집에 돌아오지 못할 경우엔 구급차에서 내려 응급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과 맞닥뜨려야 한다. 의사로부터 듣게 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순차적으로 대기하고 있는 절망적이고 슬픈 절차까지 겹겹이 쌓여 가슴 한가운데 지워지지 않는 멍으로 오랫동안 새겨진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순간들도 구급차 안에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4년 동안 파킨슨이란 지병을 앓으셨지만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잘 관리한 덕에 진행은 더딘 편이었다. 그러다 급격히 체중이 감소한 것이 염려되어 병원 진료 예약을 잡고 입원 대기 중이었으나 2주 넘게 무소식이 거듭되자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더는 버틸 수 없어 결국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대원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부축하고 나는 서둘러 뒤를 따랐다.
구급차를 타면 그나마 안도감이 들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난생처음 겪는 낯선 공간에 올라탔을 때부터 긴장감은 배가 되고 차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눈물이 차올라 그칠 줄을 몰랐다. 가까스로 병원에 입성해 한시름 놓은 것도 잠시, 위암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1차 소견에 혼이 절반 나간 상태로 검사와 수납을 반복하며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뛰어다녔다.
그러다 손에 들고 있던 아버지의 지갑은 주인 모를 검은 비닐봉지로 바뀌어져 있었고 열어보니 삼선무늬 슬리퍼 한 짝이 보였다. 이 봉지의 주인도 어쩌면 나와 같은 심정으로 병원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거듭 목이 메었다.
조직검사 결과 아버지는 급성 위암 4기셨다. 심지어 돌연변이성으로 발병하면 한 달 안에도 빠르게 전이될 만큼 손 쓸 수 없는 케이스라서 '왜 하필 이 암에 걸리셨냐'고 의사도 안타까워했다. 이어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 연명치료를 권했다. 아버진 "집엔 못가겠구나...!" 말씀하셨고 병원에 들어온 지 1주일 만에 다시 구급차를 탔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이동 침대에 몸을 누인 채 고요히 천장을 응시하시던 아버지의 두 눈과, 닦아도 닦아도 흐르는 눈물을 아버지 몰래 훔치던 한 손, 너덜너덜해진 병원 서류 봉투를 꼭 쥐고 있던 다른 손의 축축한 물기도 아직 기억한다.
의사 소견대로 아버지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악화해 결국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지 한 달 만에 돌아가셨고 또다시 구급차로 타 병원의 장례식장에 옮겨졌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총 3번의 구급차를 탔다.
구급차를 향해 기도하는 마음
멀리서 황급히 달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 앞서가던 차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홍해를 가르듯 길을 열어준다. 도로교통법상 당연히 지켜야 할 규칙이니 자동반사적으로 양보한 거라 하겠지만 촌각을 다투는 구급차 안에서 두 갈래로 길이 열리는 광경을 눈으로 목격했을 때의 소감은 마치 생사의 기로에서 생으로 이어지도록 안내받는 것처럼 전해져 온다.
정작 한 분 한 분께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리고 도로 위에 수많은 빚을 진 채 그사이를 송구스럽게 통과하고 만다. 트라우마가 힘든 기억만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했던 과정에서 받았던 감사와 배려 또한 절대 잊지 못한다. 보답이라 하기엔 미약하지만 나 역시 운전할 때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만 들려와도 미리 길부터 열어놓으니까.
119구급차가 동네를 벗어난지 한참이 되었건만 아직도 미세한 심장의 두근거림이 여진처럼 느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구급차를 보면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고 가슴 한켠이 저려 숨도 눈덩이처럼 뭉쳐진다.
간호사였던 친구조차 아버지를 여읜 후 3년 동안 구급차만 지나가도 길 위에서 울었다고 했다. 눈앞에서 쏜살같이 지나치는 찰나에도 어쩌면 그토록 선명하게 재생되는지...! 다시 한 번 숨을 깊게 몰아 내쉬고서 구급차를 향해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제발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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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만 보면 '철렁'... 귀에 새겨진 아버지와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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