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공사관에... 무섭지는 않지만 외롭습니다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미국 신문에는 온통 가짜 뉴스가

등록 2023.07.05 08:35수정 2023.07.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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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5년 봄 조선의 시공간으로 여행합니다. 미국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신 신문을 보면서 나는 헛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조선에 대해 터무니없는 보도들이 실려 있기 때문이었죠. 뉴욕 헤럴드지를 비롯한 신문들은 조선을 섬이라고 기술하는가 하면, 서울에 주재하지도 않은 영국 공사가 만찬을 베풀었다고 하는가 하면, 국왕이 산속으로 피난을 갔고 미공사관은 제물포로 이동했다는 둥 온통 가짜 뉴스였죠. 


희한한 일이었지만 갑신정변의 그 난리통에서 미국공사관을 비롯한 서양 와교공관들은 조금도 안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어요. 미국공사관이 제물포로 옮겨갈 일이 없었던 거죠.
   
또 미국 신문에는, 갑신정변 첫날 밤에 고종 혹은 개화파들이 푸트 공사에게 입궐하여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에 만일 응했더라면 사태가 수습되었을 것이고 군인들간에 무력충돌도 없었을 것이라는 논평이 실렸더군요. 그 또한 얼토당토 않은 추측입니다. 나는 내부자로서 편지에 이렇게 적지 않을 수 없었다오.

"푸트 공사는 정무감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입니다.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 그걸 타파하기 위한 어떤 행동계획도 세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오직 일신에 닥칠 위험에 지레 겁을 먹고 피신하기 급급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 결과 그는 볼썽사납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줄행랑을 쳤던 것이죠. 조선이 가장 절실히 도움을 필요로 했던 그 순간에 말이죠. 저는 이 진실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여론의 뭇매를 맞겠지만요." - 1885.4.3 편지

나는 고종의 속내를 나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의 속마음은 개화파 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갑신정변 주동자들은 천하에 몹쓸 역적으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동정적인 언사를 한다면 목숨이 날아가고 말 것입니다. 국왕 또한 그들을 사악한 역적이라고 규탄해야만 합니다. 청나라와 조정의 친청 사대파들이 왕에게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강박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왕이 가슴속으로는 혁명가들 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혁명가들은 조선을 떠났고 왕은 홀로 남았습니다. 고립무원에 빠진 왕은 속에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지 않으면 그는 독살되고 말것입니다." - 1885.4.3 편지

내 친구 서광범의 모친과 아내는 오랫동안 산 속에 숨어 있었는데 얼마전에 압송, 투옥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종의 배려로 감옥에서 나와 사가에 안치되었습니다. 의지 가지없는 그들은 병들었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부인에게는 아이가 딸려 있었구요. 그들을 돕는 것이 발각되면 목숨을 잃고 말 겁니다. 그 집안의 가복인 수일이를 나는 3개월 동안 공사관에 숨겨 주고 있었지요. 수일이는 밤에만 몰래 서광범의 가족들을 만나러 갑니다. 나는 그 편에 많은 돈을 건네주었습니다. 

"이실직고하는 거지만 저는 그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저는 뿌듯하고 기쁩니다. 만일 이게 조선 정부에 알려진다면 어떤 사달이 날까요?" - 1885.4.3 편지


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갑신정변의 여파가 어떤 상황을 빚었는지 좀 더 이야기하고 싶군요. 일본이 조선에서 갑신정변시 청나라군의 공격으로 받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하여 중국에 사절을 파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지난 3월 3일이었습니다. 그 소식은 한양에서 대치중인 청.일 양군 간에 교전이 일어날 거라는 공포감을 일으켜 민심을 극도로 동요시켰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600명, 청군은 1000~1200명을 헤아렸습니다. 양군은 적개심이 불타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민중이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절반은 피난을 떠났고 농부들은 일손을 놓았으니까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고 나라는 유지되기 어려울 지경이었지요.

한국인들이여, 당시 나는 수수방관할 수가 없었소. 목숨을 건 비상한 각오로 뛰어 들었다오. 비상시 고종 구출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지요. 그 진실을 나의 편지가 엿보게 해줄 겁니다.

"나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조선인들, 일본인들, 청나라 사람들 사이를 마치 벼룩처럼 뛰어다녔습니다(I flew like a flea.....)  나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그렇게까지 동요할 상황이 아니라고. 마침내 나는 다른 외교관들과 함께 정부로 하여금 포고문을 발표하여 민심을 수습토록 유도하였습니다.

동시에 정부 고관들을 만나 그들의 공포가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지를 설득하였습니다. 그게 3월 14일이었지요. 그 후로 점차 안정이 회복되어 갔답니다. 어찌보면, 조선인들이 공포감에 사로잡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일본이 중국과 한 판 붙을 태세인 가운데에 중국은 조선 지배 야욕을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이곳에선 일본군들이 중국군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양국의 무장 군인들이 길위에서 대치히고 있는 형국이지요.

각국 정부들간에 심각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그 시잠에서 말이죠. 저는 당장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리라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고종 임금을 제물포에 정박중인 군함 오시페호Ossipee로 피신시킬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큰 소란에 휩싸이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겁니다.

어머님, 아버님, 이  환란의 시기에 공사관을 홀로 지키고 있어야 하는 저의 심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공포심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외롭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이 기이안 공사관을 망연히 바라 봅니다. 머리 위에 걸린 커다란 대들보들, 문위에 덮힌 창호지... 담 밖에서는 뜻모를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문득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책을 들춰보기도 합니다. 돌아누워 잠을 청해  보지만 의식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곤경에 처한 조선이라는 나라에 미국이 일찍이 안겨 주었던 그토록 많은 약속과 기대감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데 대하여 지금 미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보상을 하려고 애를 쓰는가? 그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나의 조국 미국이." - 1885. 4. 3 편지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조지 포크 #고종 #서광범 #푸트 #갑신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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