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장쩌민김대중과 장쩌민입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김대중, 시진핑을 향해서도 조언하다
중국과 국제관계에 대한 통찰력은 그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김대중은 미중우호협력관계가 언젠가는 흔들릴 수 있다고 예견했기 때문에 미중협력이 이뤄지고 있을 때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동북아평화체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북 햇볕정책과 함께 미중협력관계 지속을 위한 국제외교도 병행했다.
그래서 김대중은 미국에서 중국위협론이 불거지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향해 대중국 햇볕정책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중국을 향해서는 상승한 국력을 바탕으로 패권을 추구하지 말고 협력적 리더십 발휘를 강조했다. 김대중은 미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를 두고 충돌할 것을 경계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평화를 이루고자 했다.
이러한 김대중의 담대한 외교는 큰 성과를 거뒀으나 네오콘이 주축이 된 미국 부시(G.W.Bush) 정권의 패권적인 일방주의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그이후 동북아지역에서 나타난 여러 현상을 목도하면서 김대중은 2006년에 동북아지역에 신냉전의 도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로 당시 상황을 크게 우려했다.
동북아 정세는 제2차 냉전시대를 지향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1차 냉전이 미·소 대립이었다면 2차 냉전은 미·일 대(對) 중·러인데 그 사이에 한국이 1차 냉전 때와 같이 주무대가 되는 상황으로 가는 게 아닌가, 또 한 번 우리가 시련 속에 있지 않나 걱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미리 예견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김대중은 1990년대에는 미중관계발전을 위해 미국의 대중국 외교기조에 대한 조언을 주로 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을 향해서도 여러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국력이 상승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말고 협력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김대중은 서거 직전 마지막 해외 방문이 된 2009년 5월 중국 방문 기간 중에 당시 시진핑 부주석(2023년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났다. 이때 김대중은 중국의 '천하태평' 사상을 원용해서 중국의 바람직한 국제적 리더십의 방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현재의 대국은 억압과 착취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책임을 지는 대국, 평화에 대한 책임, 기아에 대한 책임, 질병에 대한 책임, 환경에 대한 책임, 인류 화해에 대한 책임, 이런 것을 지는 것이 대국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한나라 혹은 명나라, 송나라 시절이었을 때 중국 대륙이 천하였습니다. 그때도 최고 이상이 천하태평이었습니다. 그때는 황제가 그 책임을 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구를 하나의 천하로 보는 그러한 천하태평을 바라고 또 그것만이 인류가 파멸하지 않고 살아갈 길인데 그 점에 있어서 오랜 천하태평의 이상을 가지고 있는 중국, 그리고 이제 실질적으로 세계에 그러한 공헌을 할 수 있는 중국이 지구 전체의 천하태평의 선두에 서서 큰 역할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 전쟁 후유증과 금융 위기 등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때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서 소련 붕괴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있던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국가로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었다.
김대중은 이미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중국이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해결을 위해 국제적 차원의 협력적 리더십 발휘가 필요하다는 것을 중국의 전통적인 '천하태평' 사상을 통해서 설명했다. 이처럼 김대중은 오래 전부터 중국과 국제관계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예지력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