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모동마을 폐쇄된 보건소를 마을도서관으로 재생한 ‘상주 모동마을’
정기석
2000년대 이후 상향식, 내생적 정책패러다임 전환을
2000년대의 정책목표는 복합생활공간 개발 및 삶의 질 향상이었다. 기존의 하향식 일변도 사업추진 방식에서 상향식, 내생적 방식의 정책패러다임이 적용되었다. 마을, 권역, 읍면 단위에 걸쳐 생활환경 정비, 지역특화 농촌자원 개발 및 산업화, 도농교류, 통합적 농촌개발 등 다각적 사업목적을 설정, 지방소도읍육성지원법, 농림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지역 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 도시와 농어촌간의 교류촉진에 관한 법률, 농어업, 농어촌 및 식품산업기업법,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어촌체험마을, 접경지역개발, 지역특화품목육성, 아름마을가꾸기, 정보화마을시범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 농촌전통테마마을, 소도읍육성, 농촌마을종합개발, 어촌마을종합개발, 문화역사마을, 전원마을조성, 신활력, 지역농업광역클러스터, 농어촌테마공원조성, 거점면소재지마을종합개발, 농어촌뉴타운조성 등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설계하고 시행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통합적 농촌개발과 지역간 연계를 목표로 자율적, 네트워크형 마을을 지향했다. 권역, 읍·면, 연계 지역 등에 걸쳐 농촌융복합산업, 지역간 연계 협력사업 등은 물론 심지어 도시재생뉴딜사업, 어촌뉴딜사업 등이 농어촌지역의 주요 거점 읍·면마다 시행되고 있다.
2020년대 이후에는 농촌공간의 체계적·효율적 토지이용이 가능하도록 농촌의 일정 지역을 용도에 따라 구획화(zoning)하는 농촌특화지구 도입,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 제정, 일부사업의 지방위양에 따른 농촌공간 전략계획 및 농촌생활권 활성화계획 농촌협약 등이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계획설정형 마을의 현주소, 또는 농촌지역개발사업의 현주소는 결코 성공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다. 우선 이른바 '한국형 농촌지역개발사업' 정책이 하향식, 관주도, 토건형 모델로 설계된 태생적인 한계와 오류가 문제다. 한국의 농촌지역개발사업은 1970년대 물리적 환경개선 위주의 개발지향적 '새마을운동'으로 본격화됐다.
1980년대 들어 농촌정주생활권 개발, 농공단지 등 농촌공업화, 소도읍 활성화 등 공업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1990년대는 농지제도 폐지,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으로 농촌지역 난개발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비로소 2000년대 들어 국토균형발전, 상향 공모식 농촌지역개발사업 등의 전향적 정책이 도입되었으나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중앙정부에 예속된 유사·중복 사업의 주체 간 갈등과 시행착오가 끊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 농식품부를 비롯해 농진청, 행안부, 문화부, 국토부 등의 각종 농촌지역개발 유사·관련사업이 중복적으로 양산되었다. 이에 따라 부처 간 헤게모니 다툼, 중앙과 지방의 불협화음, 행정과 주민의 갈등만 야기하며 파행과 시행착오의 사례가 난무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개발'이라는 토건적, 전지행정용 관성과 관행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또한 지자체가 중앙정부 예산에만 의존하다보니 타율적인 단기사업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 지역에서는 중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이 부재한 상태로 단위사업 형태의 단기사업을 반복, 대부분의 사업비를 중앙정부에 의존해 지역별로 독자적·자율적·창의적 사업의 계획이나 추진도 사실상 어려웠다.
출렁다리, 커뮤니티센터, 둘레길 등 기존사업이나 타 지역의 유사사례를 모방하고 답습하면서 단순하고 단기적인 생활기반 및 환경 개선사업 위주의 개별단위 물리적 토건사업에 치중하는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사례가 지역마다 되풀이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