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당에서 타코와 같이 나온 7가지 소스. 안 매운 소스는 없음.
김상희
그때와 내가 달라졌다면 이제는 타코 안에 뭐가 들었는지 구분해 가며 먹는다는 사실이다. 이 집의 타코용 고기는 철판볶음이나 직화구이가 아니라 돼지기름 라드로 고기를 삶다시피 하는, 카르니타스(Carnitas) 방식이다. 기름의 감칠맛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사랑받는 타코다. 저녁을 추억과 감격에 젖어 먹었다.
그런데 영혼의 음식도 배신을 하나? 아마도 점심때 갔던 타코집 소스가 원인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남편과 내가 두 끼를 똑같은 메뉴로 먹었는데 나만 점심 식당의 소스를 먹었다는 점과, 남편은 이상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무래도 점심때 화려하게 나온 소스에 흥분해 이것저것 무리하게 먹어본 게 화를 부른 것 같았다. 여기에다가 전날 5시간 넘는 버스 이동으로 여독이 덜 풀린 컨디션에 땡볕에 많이 걸었고 잘 안 마시던 찬 맥주도 과하게 먹었고...
타코 먹을 때 토핑과 소스에 욕심내지 말자고 해놓고 나 스스로 소스의 함정에 빠져 버렸다. 평소 매운맛을 좋아하는 편인데 멕시코 고추는 차원이 다르다. 이곳 고추는 맵기 척도인 스코빌 지수(Scoville Scale)로 표시했을 때 우리나라 청양고추의 최소 3배 이상이다.
멕시코에서 고추는 일용할 양식이다. 마트에도 야채칸엔 고추밖에 없다. 스낵 칩에도 고추 살사 소스를 뿌려 먹고, 맥주에도, 과일에도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고추가 없는 하루는 태양이 없는 낮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