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의 발설지옥입으로 죄를 지은 자들을 벌하는 곳으로 혀를 뽑아 소가 쟁기로 밭을 간다.
주호민(신과함께)
주호민의 만화 <신과 함께>를 보면 이 발설지옥의 이야기가 나온다. 길가에 열려 있는 과일을 맛보고 감탄하는 망자(김자홍)에게 덤덤하게 건네는 저승 변호사 진기한의 말이 아주 인상적이다.
"지금 이 길, 혀예요. 혀를 경작하고 나무를 심은 과수원이죠. 웬만한 흙보다 잘 자랍니다. 똥거름을 따로 뿌릴 필요가 없어요. 제대로 썩어 있죠."
세상 어떤 거름보다 더 썩어 있는 것이 사람의 혀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왠지 입안이 텁텁해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이제는 악플(악성 댓글)로도 죄를 짓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손가락도 뽑아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할 듯한 염라대왕의 고충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는 게 최선인가?'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절대 하지 않을 막말들. 그런 말들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그나마 한 가지 마음이 놓이는 것은, 돌아오는 것이 막말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미안.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까는 미안했다."
"어... 아니에요. 저도 다를 거 없었네요. 죄송해요."
테더링 사건으로 날이 섰던 나의 신경이 형의 깔끔한 사과에 속절없이 무뎌졌다. 재빠른 사과에 살짝 당황했다. 어쩜 저리도 사과가 깔끔할까... 내심 감탄하기도 했다. 동글동글 예쁜 사과. 나는 그 사과를 받자마자 바로 돌려주었다. 형과는 더욱 돈독해졌고, 과오를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멋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위로의 말은 위로로 돌아오고 격려의 말은 격려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내게 왔던 배려와 애정의 말은 다시금 귀소본능을 발휘해 그들의 주인에게 돌아간다. 누군가의 입에서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는 작은 감탄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니, 이제는 내게 돌아올 말들을 잘 선별해서 흩뿌려볼 요량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내가 남에게 뿌린 말이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음을 기억할 때, 세상까지는 몰라도 나는 조금 더 살만해질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부디 좋은 말을 많이 뿌리고 다니길, 그래서 내 혀에서 향기가 나길. 그렇게 주고받은 좋은 말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살만해지고, 끝내 발설지옥의 과수원엔 흉년이 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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