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태안화력발전소 24살 비정규직 고 김용균씨의 시민분향소.
권우성
'그날'의 기억은 꽤나 선명합니다. 새삼스럽게, 이 나라는 사람을 죽이면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거든요. 당신의 소식을 접하고 한참 멍하니 있었어요. 산업재해로 또 한 명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괴로웠습니다. 동시에 매일매일 누군가 죽는 세상에서 나는 오늘을 또 살고 있다는 게, 가끔은 그를 잊고 있다는 게 괴롭게 마음에 박혔습니다. 24세의 청년, 비정규직, 또래였던 당신의 죽음이 나를 다시 현실로 돌려놓았어요.
저는 용균씨를 모릅니다. 모순적이지만 또 조금 알기도 하고요.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지만, 김용균재단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용균씨의 얼굴을 참 많이 봅니다. 이번 5주기 추모 상징으로 쓸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홈페이지를 정리하면서도 오래 들여다봤네요.
이야기도 많이 들어요. 생전에 치킨을 좋아했다는, 새로운 과자가 나오면 엄마랑 같이 맛보려고 사 왔다는, 저처럼 밥을 아주 느리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먹었다는 얘기예요. "우리 아들도 참 좋아하는데", "전에 우리 아들이 집에 무얼 가져왔는데", 그렇게 시작하는 김미숙 대표님의 말을 통해서 저는 새롭게 용균씨를 알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그럴 때면 문득 일터가, 이윤이, 한 사람의 삶을 앗아갔다는 말이 체감됩니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의 반복
이제 저는 당신보다 나이가 들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한해 한해 삶을 더해가는데 용균씨는, 용균씨와 같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멈춰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참 아픕니다. 대체 왜 죽어야 할까요? 누가 타인의 삶을 멈출 자격을 갖는 걸까요?
재단에서는 매달 소식지를 냅니다. 한 달 동안 김용균재단이, 김용균의 이름을 걸고 다녔던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요. 분노스럽게도 매일 사람이 죽고, 또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더 이상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옵니다. 그런 현장의 이야기와 여전히 남은 우리의 과제, 그를 위한 재단의 활동을 담아요. 그리고 또 하나, 매달 일터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고성 산업재해 피해자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줄로 기록되더라고요. 정리할 때도 그 사실이 무척 낯설게 느껴져요. '무슨 작업을 하다가 추락', '무슨 작업을 하다가 끼임'. 그리고 정말로,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3년 9월의 사망을 정리하고 있자면, '날짜를 착각했나?' 하고 다시 확인합니다. 8월의 사망과 유형이 너무나도 같거든요. 이번 10월에는 지붕 위에서 추락한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이렇게 같은 유형의 사망이, 정말로 안전 장비만 있어도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왜 이러한 죽음을 당연하게 여길까요? 보고 있으면 마음에서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솔직하게, 소식지에 그 코너를 정리하면서는 사무실에서 욕도 많이 했어요. 못 막는 게 아니고 안 막는 거니까요.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그 죽음의 진실을 들여다보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래서 또 매일 사람이 죽는 세상. 이런 세상은 망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디에라도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하지만 절망적인 세상에서도 계속 애쓰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니 같이 나아가야겠지요.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망하기 직전까지 우리는 또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 테니까요.
세상의 김용균들을 기억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