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손질작업은 지금까지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유신준
비상사태가 언제든 다시 표면화될 불씨를 안고 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사부가 쥐고 있는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트집과 짜증만 점점 심해지고 있다. 내 귀를 의심할 정도다. 이 사람이 내가 여태 경험한 사부가 맞나 싶었다.
좋았던 옛날의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이해할 수 없는 사부 언행들에도 나는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입장이고. 완전히 외통수에 걸렸다. 나가라는 말은 직접 안 하지만 알아서 나가라는 의미다. 이 사람은 왜 가장 치사한 결별 방법을 택했을까.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라면 그것이 제도건 관습이건 계속할 이유가 없다. 정원 손질 작업은 지금까지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3킬로그램 감량의 과도한 노동강도는 얼마든 견딜 수 있지만 신경질적인 잔소리 속에서 느끼는 모멸감은 견디기 힘들다. 나는 이곳에 극기훈련을 하러 온 것이 아니고 일본 정원 공부를 하러 온 거다.
비상사태 이후 시간들은 어쩌면 이별의 격식을 차리기 위한 조정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좋았던 사제 관계를 뒤돌아보며 아름답게 헤어지는 절차같은 거다. 인간사 헤어짐은 도처에 있는 것. 지금까지 인연에 감사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면 좋은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현실은 다르다. 쌓았던 관계까지 파탄나고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이런 이별은 모양이 빠진다. 모든 이별에는 예의가 필요한 법이거늘.
다른 길을... 마음을 굳히다
사실은 달콤한 이별을 기대했었다. 옛날의 사부라면 적어도 이별의 예의는 지켜줬을 것이다. 모처럼 일본까지 정원공부하러 왔는데 나한테 노가다만 배워서 되겠느냐고. 6개월 정도면 현장 경험은 충분하니 범위를 넓혀 더 다양한 공부를 해보라고. 한번 제자는 평생 제자니까 공부하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고.
사실은 나도 요즘 같은 작업만 매일 반복되고 있어서 거취를 고민하던 중이었다고. 예상보다 빠른 졸업이지만 사부의 혜안에 감사드릴 뿐이라고...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사제 정담을 적고 싶었다. 준비해 놓은 작별 인사말도 있었다. 사부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르쳐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고 그 가르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잘하며 살겠습니다... 마음이 아프다.
마무리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오늘 사부의 모습이 내가 당신을 평생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 될텐데... 나는 아름다운 이별을 꿈꿨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사부갑질 모드로 모든 게 물거품이 돼 버렸다. 나는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은 어디서든 들고 남이 분명해야 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