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일본 정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유신준
전정 작업도 마찬가지. 나무마다 목적에 따른 작업 시기가 따로 있지만 일반적으로 늦가을부터 시작하는 게 통상적이다. 가을 전정은 좋은 점이 많다. 활엽수는 가지가 드러나니 작업이 한결 쉽다. 침엽수도 봄까지 새 순이 자라지 않아 전정해 놓은 대로 가지런한 모양새가 깔끔하게 유지된다. 가을철 정원사들이 바빠지는 이유다.
일본에서 대대적인 정원 손질은 대개 쇼가츠(설날)와 오봉(추석) 등 명절에 맞춰져 있다. 손님들이 찾아오고 조상님을 맞이 하려면 집안을 깨끗하게 해야하니 명절 전에 정원을 손보게 된다. 추석 전정은 나무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필요에 의한 부득이한 경우다.
식물은 봄에 순을 틔우고 여름에 자라는 게 본능이다. 추석 전정이 때로는 식물의 성장 본능을 자극해 자르기 전보다 더 무성해지기도 한다. 12월 전정은 설명절을 대비한 전정이다. 새해맞이 대 청소는 정원 손질이 우선이다. 설날 전정도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식물 생리와 맞아 떨어지는 시기다.
아내를 위한 정원
오랜만에 요시다 선생에게서 미팅 연락이 왔다. 정원 공사 견학을 겸한 바깥 나들이 동행이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려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나들이가 제격이다. 바깥 바람은 웅크린 마음을 북돋워 준다. 상심한 제자를 위한 이벤트인가.
요시다 선생도 사부와의 관계를 알고 있다. 정원 관리 작업은 그정도 배웠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르고 다듬고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었으니까. 물론 작업을 계속할수록 기능이야 숙련되겠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시기였다. 울고 싶은 참에 뺨을 맞았달까.
오늘 나들이 목적은 정원석 선별이다. 돌은 일본 정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보통 일본정원의 3대 구성요소를 돌, 물, 나무라 하는데 그 중심이 돌이다. 이시구미(石組, 돌 배치)는 일본 정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800년 전에 쓰여진 일본 최고의 정원서 작정기(作庭記)도 이시구미 기록이 핵심이다. 작정기는 일본 정원사들의 바이블이다. 돌을 조합하고 배치하는 기법을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다.
정원석 선별 나들이는 요시다 선생이 의뢰받은 정원 공사의 준비 작업이다. 선생은 여성 신변용품을 파는 마츠리라는 가게에서 공사를 의뢰 받았다. 지금까지 봐 온 정원에 비한다면 정원이랄 것도 없는 규모다. 건축부지 한쪽 면을 활용한 자투리 정원이니까. 집 짓고 나서 경계까지 좁은 땅을 활용한 초미니정원이다.
의뢰인 남편은 그곳에 아내를 위한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과 가게에 어울릴 만한 정원을 찾아다녔다. 오랜 고민끝에 결정된 정원이 가레산스이(枯山水, 고산수) 정원이다. 작은 장소에 어울리면서 가게 건물과도 잘 조화되기 때문이다. 폭95센티에 길이 6.5미터의 아담한 가레산스이 정원이 결정된 연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