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춘천마라톤 대회를 달리는 김동수씨. 오른쪽 가슴에 세월호 리본을 달고 뛰는 그의 마라톤은 어쩌면 그만의 애도이자 치유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변상철
'마라톤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희열감을 느낀다는 그런 순간(소위 이런 순간을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느끼는 것인가?'
김동수씨의 사진을 본 이후 나는 그 표정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 온화함과 평안함. 주변의 여러 상황이 어지럽게 꼬여 힘들어하던 나에게도 그 온화함과 평안함이 필요했다.
국가폭력, 고문, 차별, 혐오 등의 피해자 인터뷰는 내 안에 고스란히 누적되었고, 그 누적된 감정들을 해소하지 못한 나는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몇 년간 상담과 치료를 병행했지만 상황이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 힘들어 질 때마다 그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한 처방약에 의존하고 있었을 뿐 소위 '마음 근육'을 키우는 것에 애를 먹고 있었다. 정확히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사고를 겪은 김동수씨가, 수시로 세월호 참사의 기억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김동수씨가 저렇게 평안함을 느끼다니...
며칠 후 밤 나는 집에 있는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길로 한강 산책길을 달렸다. 전혀 준비 없이 나는 그날 무모하게도 10km를 달렸다. 그리고 터질듯한 심장만큼이나 터질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날의 페이스북에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10km를 뛰었다가 죽는 줄 알았다.
중도에 포기하고 걷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뛰었다.
살기 위해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10km도 이렇듯 힘든데
동수 형은 42.195km를 완주했다.
부끄럽게도 동수형이 뛰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10km지만
서울에서 제주의 동수 형을 생각하며 자주 뛰려한다.
같이,
함께 살기 위해...
-2022년 10월 26일 페이스북 -
페이스북에 글이 게시된 뒤 얼마 지나 김동수씨로부터 '고생했어'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그리고 두달 뒤 그로부터 마라톤화 한 켤레를 선물 받았다. 본인이 신고 달렸던 런닝화였다. 언뜻 보기에도 전문 러너의 포스가 넘치는 신발이었다. 그 운동화로 나는 김동수씨와 연결되기로 했다. 함께 달리는 것, 그리고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살기 위해 달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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