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덕사 정원은 사찰 앞쪽의 외정원과 뒷편의 내정원으로 분리돼 있다.
구글 캡쳐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의 삶이 삐딱선을 타고 있을 때 누군가 적극적으로 말렸더라면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 아니냐고. 가족이나 지인들이 몰락하는 그의 삶을 보면서 방관만 했겠는가.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됐을 것이다. 분에 넘치는 막대한 수입이 생기면서 이미 정해진 그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어떻게 일생을 바람직하게만 살 수 있나. 나는 잘잘못을 떠나 요시이 할배에게서 풍기는 거친 날것의 냄새를 좋아한다. 천장과 바닥을 가볍게 찍었던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듣고 있노라면 삶의 진한 여운이 묵직하게 올라온다. 쿠마사부처럼 단조롭게 바른 길만 걸어온 범생이과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요즘 요시이 할배는 동생과 팀이 되어 일한다. 동생인들 그를 곱게만 보겠는가. 저간의 사정을 알면 물어보지 않아도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가족이니 내치치 못하고 어쩔수 없이 봐주는 정도라는 걸. 일터에서는 오가는 말이 거의 없다. 각자 묵묵히 자기 일만 한다. 요시이 할배가 연장자니 팀의 매니저다. 함께 정원도 손질하면서 일감도 구해오고 정원주와 계산을 하는 등 전체를 총괄한다.
동생은 정원사 13년차다. 말하자면 이 팀의 메인 정원사다. 그의 나무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건물 3층 높이와 맞먹는 마키나무에도 맨 몸으로 훌쩍 오른다. 벨트 하나에 의지한 채 가지를 만들어 올라가는 그를 보면 거의 달인 정원사의 경지다.
내가 맡은 일은 뒷정리다. 나는 정원사들이 잘라놓은 가지를 할배 경트럭에 옮겨놓고 청소를 한다. 청소는 정원사의 일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정원 손질의 기본은 청소라는 게 쿠마사부의 정원작업 지론이었다. 언젠가 일본 정원협회장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문장 안에서 내내 강조한 것도 청소의 중요함이었다.
아무리 청소가 중요한 일이라 해도 그렇지. 이 몸은 지역 톱 클라스인 쿠마사부의 속성 정원사 과정을 마친 1번 제자아니던가. 바리캉만 쥐어줬다 하면 정원을 날아다니는 가리코미 기능공에게 정원 뒷정리 막일만 시키는 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그건 아니다. 원래 청소부터 차곡차곡 시작했어야 정원사의 삶이 순조로운 법이었다. 첫날부터 작업현장에서 바리캉을 맡기는 파격적 초고속 승진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강제졸업을 당하는 초대형 삑사리가 난거다. 소년등과(젊어서 과거에 급제한다는 말) 패가망신이라 하지 않던가. 옛말치고 그른 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