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의 바다
Widerstand
그 가운데 그나마 외부와 가까운 땅은 서남쪽의 섬 규슈입니다. 태평양에서 미국이, 시베리아에서 러시아가 나타나기 전에는 사실상 유일한 외부와의 소통 창구였죠.
제가 도착한 후쿠오카는 한국과의 교류가 지금까지도 활발한 도시입니다. 부산과 후쿠오카를 오가는 배편도 활발하게 운항하고 있죠. 덕분에 많은 한국인이 여행하고 또 체류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북규슈는 고대부터 한반도와 깊게 교류한 지역입니다. 물론 항해가 쉽지는 않았지만, 교역과 접촉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거의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전국시대가 그랬습니다. 1467년 오닌의 난으로 교토가 불타며 중앙 세력의 통제력은 사라졌습니다. 지방으로 흩어진 무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력권을 구축하기 시작했죠.
중앙의 통제가 사라지면서, 규슈의 영주들은 더 쉽게 외부 세계와 접촉했습니다. 중국과 조선은 물론, 동방으로 진출하고 있던 서양 세력과도 만났습니다. 이 시기 많은 수의 일본인들이 규슈를 통해 해외로 넘어갔습니다. 누군가는 무역을 했고, 누군가는 '왜구'라 불리며 해적이 되었죠. 둘 사이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도 않았습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무역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은 막대한 은 생산량을 기반으로, 유럽에서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잇는 세계 무역 네트워크의 일원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