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충남 공주·부여·청양)이 19일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 당선인은 이번 총선에서 현역인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남소연
8년 전, 3367표 차이로 졌다. 4년 전에는 2624표로 격차를 좁혔지만 또 패배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2780표 차 신승.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무거웠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충남 공주·부여·청양)은 "기자들이 '왜 안 웃나'라고 물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전국이 파란색으로 물든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민주당이 이 정도로 잘했을까? 성과를 못 내면 다음엔 우리가 심판받겠구나'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털어놨다.
당선이 기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보다 절실했던 그였다. 19대 총선 당시 공주 단일 선거구에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박 당선인은 20대 총선에선 부여와 청양까지 누벼야 했다. 워낙 보수세가 강한 곳들이라 모두가 그의 낙선을 예상했다. 그럼에도 박 당선인은 "'절대 지치지 않겠다. 반드시 이 지역에 민주당 깃발을 꽂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게 돼서 기뻤다"고 말했다.
'근면성실'말고 다른 비결은 없었다. 초선 시절 매일 고속버스로 출퇴근했던 것처럼 지금도 박 당선인은 지역에 상주한다. 19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역시 그의 동선을 고려해 서울역에서 이뤄졌다. '지역구 관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공주와 부여, 청양은 모두 농촌지역이자 행정안전부가 정한 인구감소지역이다. 주민들은 박 당선인에게 '우리 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만큼 지역의 문제가 절실하기 때문에 그는 지역에 밀착해 한 마디라도 더 듣고, 한 명이라도 더 만나려고 한다.
'출산장려시범지역'이란 공약도 그렇게 나왔다. 아직 구체적인 상은 잡히지 않았지만, 박 당선인은 "가장 심각한 인구감소지역의 국회의원으로서 그냥 평범한 얘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걸로 매니페스토(공약 이행 평가) 빵점 맞을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위기"라고 했다. 이미 무너져버린 농촌에는 농사 지을 사람조차 없다. 그는 "정부가 너무 안이하다"고, 국가 존속 여부가 위기인 상황에서 기획재정부가 여전히 "경제 논리만" 따진다고 답답해했다.
박 당선인은 22대 국회에서 지방소멸뿐 아니라 정치 복원에도 천착할 생각이다. 그는 국회의원 외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첫 대변인과 마지막 국민소통수석비서관, 문희상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풍부한 정치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진짜 정치'의 중요성을 아는 인물이다. 다만 박 당선인은 정치 복원의 출발점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음을 명확히 했다. 그는 이날 들려온 영수회담 소식을 두고도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충청 민심도 요동 칠 준비... '정말 못 살겠다'더라"
- 선거 후 여러 언론에 '충청도 특유의 속내를 말하지 않는 문화가 있음에도 이번은 달랐다'고 얘기했다. 도대체 어떤 분위기였나.
"초창기에는 의례적 덕담이었다. 한 달쯤 지나니까 지역 구분 없이 '수현아, 너 이번에 꼭 돼야 한다'더니,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될 무렵에는 '제발 당선해서 우리 좀 살려줘야 쓰겄다'고들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20년 만에 처음 봤다. 충청도 민심이 요동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선거는 심판 선거가 맞다. 그런데 충청도에서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의혹과 주가조작 의혹)를 심판한 건 아니다. 무능한 정치가 가져온 민생파탄 심판이다.
특히 충남은 농도이고, 공주·부여·청양은 농촌도시다. 그런데 쌀값이 폭락하고 돼지, 소, 양송이 가격이 폭락할 때 정부여당이 낸 메시지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적어도 메시지는 즉각 냈는데 윤석열 정부는 아예 무관심하다. 그러니 국민들에게 남은 건 분노뿐이었다. '이런 정부는 처음 봤다. 정말 못 살겠다'라는."
- 그 분노가 범야권 192석란 총선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총선 후 첫 육성 메시지에서 '나는 열심히 했지만 국민이 체감 못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식으로 나왔고 4시간 뒤 '고위관계자'발로 '비공개 사과'가 알려졌다. 청와대 대변인 경험에 비춰볼 때 어떻게 봤나.
"전혀 이해가 안 되니까 질문하는 것 아닌가(웃음). 총선 결과 다음날 이관섭 비서실장이 처음 입장을 표명했던 것부터 말이 안 됐다. 그 자체가 대통령실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방증이다. 이 정도 참패할 민심이면 심각한 고민 끝에 대통령이 직접 말해야 한다. 게다가 내용도 너무 성의 없는 56자였다. 그게 무슨 메시지인가.
윤 대통령의 메시지도 순서와 시기, 내용 모두 엉망이었다. 당연히 기자실을 찾아서 입장을 밝히고 국민을 대신해 묻는 기자들 질문에 답해야 했다. 일방적 홍보에 불과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했다는 것도 잘못인데, 그 반응이 안 좋으니까 대통령실 관계자가 '비공개 회의에서 사과했다'고 전한다? 코미디다. 여전히 국민에게 심판 받았다는 것도, 왜 심판 받았는지도 모르고 있다."
- 용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오직 대통령만 있다. 여당에서도 '한 사람만 변하면 된다'는 자조가 나오는 것 아닌가. 여기 참모라고 왜 고언을 안 하겠나. 결국 대통령이 다 결정하는 거다."
- 그래도 좀전에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 통화했고, 다음주 중으로 만난다는 속보가 떴다.
"제발 좋은 신호가 되길 바란다. 총선 결과와 총선 후 메시지에 대한 싸늘한 여론에 등 떠밀려 이재명 대표를 형식상 만나고자 한다면 더 큰 저항에 부딪친다. 정말 국정 운영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야당 대표에게 설명하고, 총선 민심이 반영된 야당 대표의 의견을 정중하게 경청하고 수용하길 바란다."
"수도권은 터져 죽고, 비수도권은 말라죽어... 균형 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