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5일 저녁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만찬'에서 '6.15 10주년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미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유성호
강만길 역사학의 대표적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역사의 현재성'이다. 그는 <국사학의 현재성 부재 문제>(<한국학보> 5집, 1976), <분단 사학의 반성>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1978) 등을 비롯해 여러 차례 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모든 역사가 현재의 역사라는 말은 역사가가 연구하거나 서술하는 모든 시대의 역사 속에 '현재의 요구와 상황'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재도 또한 역사학의 가치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라고 생각된다. 20세기 후반기의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론(史論)의 하나도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요약한 것을 보면 현재에의 투영이나 관련성이 없는 역사학은 20세기 역사학으로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세기에 가까운 우리나라 근현대사학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오늘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겠지만, 특히 그것의 현재성 부재 문제가 가장 큰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또 반성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한 시대 한 민족의 역사학이 그 민족이 처해 있는 현재적 요구와 그다지 연관성 없는 지난날의 사실만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현재와 가까운 시기에 대한 연구와 평가·비판을 기피한다면 학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석 1)
이런 주장에 대해 역사학자 이기백은 <한국사 이해에서의 현재성 문제>(<문학과 지성>, 1978년 여름호)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역사학은 사회과학과 달리 시대적 변화에 대한 고찰을 임무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역사학에서 현재성을 강조하는 것은 역사학의 기본적인 성격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역사학을 철학이나 혹은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므로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주석 2)
<역사 연구에서 '현재성' 논쟁>의 필자는 두 사람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두 입장의 차이점은 "역사 연구에서 현재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현재성 부재>(강만길)는 "모든 역사가 현재의 역사라는 말은 역사가가 연구하거나 저술하는 모든 시대의 역사 속에 현재의 요구와 상황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재서도 또한 역사학의 가치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역사 연구에서 현실 '반영'을 강조했다.
이에 비해 '현재성'(이기백)은 사회과학과 달리 역사학은 시대적 변화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역사에서 현재는 역사가 발전해 나가는 일정한 단계로서의 현재이며, 현재를 이해하는 최선의 길은 역사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여 역사 연구에서의 현실 '이해'를 강조했다. (주석 3)
'역사의 현재성' 논쟁이 사그라질 때쯤 양병우가 <문학과 지성> 1980년 봄호에 <통일지향 민족주의 사학의 허실 : 강만길 교수의 '분단시대 사학' 극복론에 대하여>를 발표해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학문 외적인 주관적 전제로서 연구에 쓰이는 관점이라 해석을 선택하는 것은 현재를 과거에 일방적으로 투영하여 역사의 현대화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고, 역사학이 실천적 목적에 이바지하려면 우선 그것이 학문적으로 빗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역사 연구는 추구하는 목적에 의한 가치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도달한 결과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성>에서 제기된 역사적 당위성에 대해서, 역사의 세계란 현실의 세계이지 당위의 세계가 아니므로 그 속에서는 당연한 일,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당연한 요구를 외치고 몸부림쳤어도 그것을 관철하지 못했을 경우 역사 연구는 현실이 왜 그렇게 되었으며,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땅히 그랬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렇지 못했던 일들이나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을 규탄하려 든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법론이라 할 것이다. (주석 4)
강만길은 논쟁이 격화되어도 '역사의 현재성'에 대한 사관은 흔들리지 않았다. 많은 사론과 칼럼에서 자기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오늘날의 국사학이 제구실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제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사론을 세워나가야 하며 거기에서 국사학의 현재성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생각으로는, 지금의 국사학은 분단현실을 완전히 외면한 국사학과 더욱 나쁘게도 분단체제를 긍정하고 그것을 정착 지속시키는 데 이바지함으로써 오히려 빗나간 현재성을 찾는 국사학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분단현실을 외면하는 국사학을 스스로 학문적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라 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생각으로는 학문적 객관성의 학문적 현실기피성이 혼동된 것이며, 분단체제를 긍정하고 지속하는 데 이바지하는 국사학은 학문의 현재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분단현실에 매몰되어 버린 학문이 아닌가 한다. (주석 5)
주석
1> 강만길, <국사학의 현재성 부재 문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창비, 2018, 48~49쪽.
2>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역사 연구에서 '현재성' 논쟁>, <논쟁으로 본 한국 사회 100년>, 역사비평사, 2000, 342쪽.
3> 위의 책, 342쪽.
4> 위의 책, 345쪽.
5> 강만길,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창비, 20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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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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