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서문과 민주주의 향한 열정작은 전시실이지만 꽤 알차게 꾸며져 있다. 휘트먼은 평생을 두고 시집<풀입>을 수정해 나갔다. 기존 시 형식을 파괴하고, 정제되지 않은 시어와 소재로 인해 비판도 많았다. 그러나 결국 '가장 미국다운 시'로 인정받고 '미국 자유시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휘트먼은 정치적 입장이 또렷하고 민주 시민에 의한 수준높은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연사와 저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장소영
"호기심을 가져라, 판단하지 말고"
역사 유적지를 방문하다 보면 여러 스타일의 가이드를 만난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나는 사실 옛날 생활 소품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러니 소품 하나하나를 상세히 설명하는 가이드에게서 자꾸 멀어져 딴생각이 들었다. 좁고 작은 식탁을 보면서도 그랬다. 서민들은 밥때라고 해서 딱히 먹을 것이 없었단다. 9형제를 거느린 휘트먼의 집도 그랬을 것이다. 그저 식구들이 둘러앉아 엄마가 가지고 오는 솥이나 쟁반위의 음식에 손이라도 닿게 식탁이 좁고 작았다고 한다.
휘트먼도, 휘트먼이 우러러보았던 엘리아스 힉스와 링컨도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마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좁은 식탁' 위의 소년들이었다. 그럼에도 방대한 독서량과 독학으로 스스로를 세워 나갔고, 설득력 있는 말과 글의 능력을 갖추었다. 개인의 영달보다 각자의 분야에서 이상적인 미국 사회를 위해 항해했던 세 사람을 짧은 영상으로 보고 있자니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세계적인 석학과 명문대가 넘쳐나고 요즘은 왠만한 교회 목회자도 유학은 필수라는데, '좁은 식탁' 출신 엘리아스 힉스나, 링컨이나, 휘트먼을 능가하는 이는 좀처럼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휘트먼은 청년들이 유행에 휩쓸리는 점을 우려했고, 예술과 문학의 힘이 건강한 민주 시민과 민주 사회를 만든다고 믿었다고 한다. '인문학의 힘'이 소멸되고 있는 시대라 그런지 한 세기 전 그의 말이 마치 예언처럼 들려왔다. 오늘날엔 좋은 지도자가 나지 않는 걸까. 선출되지 못하는 걸까. 길러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답도 없는 몽상에 젖어 있는데 투어를 마칠 시간이 왔다. 다들 뭐라고 인사해야 할지 안다는 듯 싱긋 웃으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휘트먼의 시집 <풀잎> 마지막 시의 제목이자, 그 덕에 미국에서 널리 쓰이게 된 인사말이 있다. 휘트먼의 유행어인 셈이다.
"So long! (잘가요!)"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벽 위에 휘트먼이 남긴 말인듯한 장식이 보였다. 무심코 사진을 찍고 차에 오르다가 문득 드라마 '테드 래소'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테드 래소도 벽위에 씌여진 휘트먼의 말을 읽었다고 했었는데.
미식 축구 코치 태드 래소는 자기를 얕보기만 하는 거만한 기업인에게 휘트먼의 명언을 일러준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보라고(Be curious, not judgmental). 그렇다. 나부터 호기심어린 눈으로 좁은 식탁앞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봐주고, 할 수 있다면 빵과 책을 그들 곁에 슬며시 놓아주고 싶다. 장대한 시가 되는 삶은 아닐지라도 점 하나쯤은 찍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