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미화 노동자의 청소 도구정희씨는 동료 한 명과 함께 하루 6시간 동안 학교 1~5층의 화장실 200칸과 복도,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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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희씨는 학교에 취업하기 전부터 청소 경력자였다. 아파트 입주 청소, 공중 화장실, 공공기관 사무실 등 청소하러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저소득층 가구, 독거노인의 집도 가봤고 아파트나 연립주택 계단청소도 했다. 거의 2년 반을 그렇게 일했다. 하지만 '저소득층 자활 지원사업'으로 청소 대행업체에 파견돼 일하는 것은 안정적이지가 않았다. 파견 근로기간도 정해져 있었고. 청소하는 공간이 매번 바뀌니 일도 더 힘들게 느껴졌다.
"원래는 강남권에 살 정도로 저희 가족 생활이 괜찮았어요. 그러다 쌍둥이 임신 7개월 되었을 때 아이들 아빠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어요. 혼자 애들을 키워야 하니 식당도 하고 미용실도 했어요. 벌이가 그때까지도 나쁘지 않았는데,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심신성빈맥이라는 심장병에 걸린 걸 발견했어요. 아이 치료 때문에 갑작스레 가게 문 닫고 병원 가는 일이 많아지니 손님도 떨어지고 가게운영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미용실 접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다가 주민센터 찾아가서 저소득층 자활 지원제도를 알게 됐어요. 그렇게 청소일을 하게 된 거죠."
큰 공간 청소일을 해 봤던 정희씨를 지금 있는 학교에서도 믿고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경력이 노동 가치로 인정되진 않았다.
"경력은 무슨? 근속수당도 없는 걸요. 저 처음 학교 면접보러 갔을 때도 생각나요. 교감 샘이 '방학 중에는 3일만 근무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애들 둘 키우면서 그렇게는 생계가 안 된다, 그냥 다른 사람 구하셔라'라고 했어요. 다행히 방중(방학 중) 근무자로 일하고 있어요."
수당 없이 최저임금으로, 풀타임도 아니고 6시간 일하면 이미 너무 적은 월급일 거라 예상이 된다. 올해부터 가족수당이 생기긴 했지만 월에 1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이다. 만약 방중 비근무자(주 3일 미만 근무)로 채용됐다면 정희씨가 지금 고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요즘에 제가 교장 샘께 7시간 근무로 근로조건 바꿔달라고 하고 있어요. 월급 올리려고 막무가내로 요청한 건 절대 아니에요. 학교가 공사를 해서 청소할 공간이 더 많아졌거든요. 세면대가 15개, 수도꼭지가 30개, 장애인 화장실 4개 이렇게 청소할 시설이 늘어났어요. 그래서 실제로 매일 30~40분씩 더 일하고 가고 있기 때문에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해요. 미화직에 대해서는 지역 기준을 준용하는 범위 안에서 학교장 재량으로 하면 되는데, 교장 샘은 '학교 운영위에 요청하셔라'라면서 피하시더라고요."
'저소득층' 굴레 벗어나고픈 정희씨의 꿈, 이루어지려면?
여성 홀로 어린 자녀들을 건사할 수 있으면서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학교 미화노동자로 일한 지 근 5년, 정희씨의 삶은 나아졌을까?
"지금 제 월급은 174만 원, 세금 제하면 150만 원 정도? 사실 이 돈으로 외벌이 3인 가족이 생계 꾸리긴 어렵죠. 저는 국민임대아파트 살고요,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다행히 임대료랑 관리비 일부는 지원받고 있어서 주거비용으로 별도로 나가는 돈이 크진 않아요. 근데 아이들이 벌써 고등학교생이라 사교육비가 안 나갈 순 없더라고요. 중학교 때까지는 학원 못 보냈는데 공부하고 싶어하는 애들, 학원 보내 달라고 하는 애들 어떻게 계속 모른 척하겠어요? 애들 애기일 때 주민센터 직접 찾아가서 지원제도 알아본 것처럼, 여기저기 장학재단 알아보고 학원 가서 사정하고 해도 학원비로 60만~70만 원은 넘게 나가요. 60만 원가량 남는 걸로 생활비 쓰는데 빠듯하죠. 외식은 안 하고 산다고 보심 돼요."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이라는 규정, 정희씨와 가족 누구도 원치 않았던 이 카테고리로 '어느 순간' 분류됐고 그 까닭에 국가 복지지원금과 장학금을 받고 있다. 안 받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거절했을 그 복지제도가 없었다면, 지금의 150만 원 노동소득으로 3인 가족 생계를 어떻게 꾸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이제까지 그의 생애에서 어떤 지원도 먼저 찾아와 주는 법은 없었다. 아이의 심장병을 알게 된 시기부터 정희씨는 온라인 카페에 가입해 아득바득 정보를 모았고, 어디든 찾아가서 자신을 증명하고 부탁하는 일을 계속 했다. 곁에서 보면 헉 소리가 나오는 위기의 순간에도 정희씨는 한 번도 노동하는 삶을 쉰 적이 없었고, 자구의 노력을 놓지 않았다.
"제 꿈이요? 저는 저소득층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요. 사회의 낙인, 눈초리 이런 걸 되물려 주고 싶지 않아서요. 그런데 쉽지 않을 거 같네요. 제가 일해서 버는 돈이 사회기준에 못 미치다 보니 주는 복지금이거든요. 그게 지원의 기준이에요. 저는 궁극적으로는 받고 싶지 않아요."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를 해서' 만들어진 삶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생의 예기치 않은 어떤 고비와 순간을 마주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노동자의 삶이 바로 정희씨의 인생이다. 이토록 꿋꿋하고 주체적인 정희씨가 단시간 최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면, 한부모 여성·저소득층이 아닐 수 있다면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상상해본다.
우리 헌법에는 국가가 모든 국민이 존엄과 가치를 갖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가 적정임금을 받고 존엄이 보장되도록 하는 근로조건을 보장할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6월 최저임금의 시즌, 정희씨와 같은 성실한 노동자 국민에게 국가는 무엇을 선사할 것인가,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