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장, 불발탄에 시름하는 라오스

[인터뷰] 김명진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소장

등록 2024.07.31 10:30수정 2024.07.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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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비엔티안 COPE 센터 미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에 투하한 폭탄 모형과 폭탄 투하 지도 모습(지도의 빨간 부분이 불발탄 집중적으로 투하된 곳이다.)
라오스 비엔티안 COPE 센터미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에 투하한 폭탄 모형과 폭탄 투하 지도 모습(지도의 빨간 부분이 불발탄 집중적으로 투하된 곳이다.)ACN아시아콘텐츠뉴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중립국이었던 라오스는 미국의 맹렬한 공습에 휩싸였다. 미국은 호찌민 트레일을 차단하고 라오스의 공산화를 막겠다는 명목으로 58만 번이나 폭탄을 투하했다. 200만 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폭탄이 라오스 땅에 쏟아져 내렸고, 이는 전투기 한 대가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8분에 한 번씩 9년 동안 폭탄을 떨어뜨리는 양이다.

이 폭탄의 대부분은 클러스터 폭탄으로, 공중에서 600~700개의 작은 폭탄으로 분리돼 축구장 여러 개 규모로 퍼졌다. 이 중 약 30%인 8000만 개는 폭발하지 않고 불발탄(UXO, unexploded ordnance)으로 남아 있다. 전쟁을 겪지 않았던 라오스에 전쟁을 치른 나라보다 더 많은 불발탄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라오스에서는 1964년 이후 불발탄으로 인해 5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으며, 그중 40% 이상이 어린이들이다. 내년에는 베트남 전쟁 종전 50주년이 된다. 전쟁은 끝났지만, 라오스에서는 여전히 불발탄과의 또 다른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10여 년 전부터 라오스 정부와 협력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라오스 불발탄의 심각성과 우리나라의 지원 현황에 대해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김명진 소장에게 들었다. 인터뷰는 7월 17일 라오스 비엔티안의 코이카 라오스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불발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라오스
 
김명진 소장 /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인터뷰 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명진 소장 /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인터뷰 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ACN아시아콘텐츠뉴스
 
- 라오스의 불발탄 현황은 어떤가?
"라오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불발탄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전쟁 당시 투하된 폭탄 2억 7000만 개 중 30%인 8000만 개가 폭발하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혀 있다. 라오스의 17개 주 모두가 불발탄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1964년 이후 불발탄으로 인해 5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지난 10년 동안에도 393명이 사망하거나 다쳤고, 특히 어린이 피해가 48%를 넘어서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 불발탄 문제는 라오스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불발탄은 단순히 인명을 해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라오스의 경제와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학교, 병원, 도로 건설 등 어떤 개발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먼저 불발탄을 제거해야 해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특히 농업에 의존하는 라오스 국민들에게는 불발탄으로 인한 피해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농사를 짓거나 밭을 매는 과정에서 불발탄이 터져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물론 라오스 정부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은 불발탄 제거를 중요한 국제 개발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라오스 정부 역시 불발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00년에 채택된 새천년개발목표(MDGs)에 이어, 2015년에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서도 라오스 불발탄 제거가 별도의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 현재 몇 개 나라가 불발탄 지원 분야에 참여 중인가?
"현재 불발탄 지원 분야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영국, 노르웨이, 독일, 뉴질랜드, 캐나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이다. 우리나라는 2014년부터 코이카를 통해 이 사업에 함께하고 있다."
 
여성으로 이뤄진  불발탄제거팀 활동 모습  .
여성으로 이뤄진 불발탄제거팀 활동 모습 .코이카
 
- 우리나라의 지원 방식이 다른 국가와 다르다고 하던데?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불발탄 제거팀의 인건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는 공여국이 원조를 중단하면 모든 불발탄 제거팀의 활동도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이카는 라오스 정부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코이카는 라오스 정부가 불발탄 제거팀의 인건비를 직접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라오스 정부가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은 코이카 사업이 유일하다. 이는 언젠가 외국 지원이 중단되더라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다. 코이카의 가장 큰 목표는 라오스가 불발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또 우리는 불발탄 제거 사업뿐만 아니라 농촌 개발 사업과 연계해 라오스 주민들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불발탄 피해자 지원 사업을 통해 피해 주민들이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여성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 불발탄 분야의 자립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우리는 라오스 국방부 내 인도적 불발탄 제거팀을 2개에서 20개로 확대하고, 훈련과 실제 제거 작업을 지원하며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라오스 외교부 산하 불발탄제거청의 역량을 키워 불발탄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 수립과 자원 관리 능력을 향상하게 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라오스는 장기적으로 불발탄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 농촌 개발 사업과의 연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불발탄 사고가 주로 농촌 지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코이카는 불발탄 제거 작업과 함께 농촌 개발 사업을 연계해 추진하고 있다. 불발탄이 제거된 지역에 K-농업 기술을 전수해 농민들의 소득을 높이고 빈곤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보리캄싸이 주에서는 후속 농촌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불발탄 제거 이후 지역의 회복력을 강화하고 농가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피해자 지원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2022년부터 코이카는 라오스 불발탄제거청과 양자 협력을 통해 시엥쿠앙 및 후아판 주에서 597명의 불발탄 피해자에게 이동 재활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장애가 있는 개인들에게 795개의 보조기기를 배포했다. 또한 408명의 불발탄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직업 훈련과 취업 및 창업을 위한 가축, 미싱 등 재정 지원을 했다. 특히 직업 훈련 프로그램은 청년동맹, 의수·의족 지원은 COPE센터 등 로컬 NGO와 협업하며 사업의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 이 사업에서 특히 여성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가 있나?
"라오스에서는 여성이 불발탄 제거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코이카는 라오스 정부의 불발탄 제거팀에 여성 비율을 15% 이상으로 제안했다. 이를 통해 불발탄 제거팀의 성주류화가 라오스 사회로 확산해 여성의 사회참여와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판단한다."

테니스 공처럼 생긴 불발탄, 아이들 장난감 오인 사고 많아
  
불발탄과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 .
불발탄과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코이카
 
- 성과가 있다면?
"코이카는 라오스의 불발탄 제거 능력을 자체적으로 키워나가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특히 불발탄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했던 농촌 지역에서 많은 양의 불발탄을 제거했고 여성들의 참여를 확대해 더욱 효율적인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와 마을을 직접 찾아가 불발탄 위험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라오스의 불발탄은 일반적인 지뢰와 달리 테니스공처럼 생겨 호기심 많은 아이가 장난감으로 오인하고 다치는 경우가 많다. 코이카는 현지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교육을 확대해 더 많은 아이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알렸다. 그 결과 2019년부터 2021년까지의 평균 피해자 수가 40.3명에서 2022년에는 20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지난 10년간 라오스의 불발탄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코이카는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불발탄 피해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보건부와 협력해 재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비엔티안 및 우돔싸이 지역의 장애인들이 재활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800만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라오스는 50여 소수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다. 내년에는 11개 소수민족 언어로 제작된 교육 자료를 제작해 소수민족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 불발탄 사고를 예방하고자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라오스는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사업이 지연될 때면 우리도 지치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이 일의 최종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라오스에서도 취약계층인 아이들, 여성, 장애인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초심으로 돌아갔다.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곁을 내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그들의 환한 미소를 보면 오히려 큰 힘을 얻게 된다. 라오스의 불발탄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불발탄으로 피해를 입은 농민  .
불발탄으로 피해를 입은 농민 .코이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ACN아시아콘텐츠뉴스에도 실립니다.
#라오스 #불발탄 #UXO #코이카 #베트남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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