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원 풍경나도 이 곰돌이처럼 고요하고 싶었다
최은영
말을 최대한 아꼈는데도 아이는 왜 짜증스럽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했더니 들리지 않게 구시렁거린다. 나는 더 짜증이 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법륜 스님 강의에 따르면 이건 그저 '참는 중' 이다. 참는 건 언젠가 크게 폭발할 테니 '차분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전두엽'을 찾아와야 한다. 애들을 들여보내고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전두엽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는지 찾기 위해 책을 뒤졌다.
내 마음 근육이 튼튼하면 상대가 날 무시해도 그걸 나의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네가 나를 그렇게 평가한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라고 퉁치고 별 일 없이 넘겨버린다는 뜻이다. 듣고보니 이게 지금까지 내 기본 기조였던 거 같다.
그렇게 튼튼했던 근육이 왜 아이 앞에서는 흐물거리는가. 내가 차린 밥상에 아이가 얼굴을 찡그리고, 태워다 준대도 귀찮아 하면 그게 나를 무시하는 거 같아서 불같이 화가 났다. 그 뒷면에는 상처받는 내가 있었다.
그 대답으로 <자기 인식과 자기 참조 네트워크의 재구성> 같은, 정말 학자들이 만들었을 법한 말을 찾았다. 아이의 비판적인 말에 대해 '이것은 아이의 감정 상태에 따른 일시적인 반응일 뿐'이라는 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남편은 아이와 내가 서로 화가 쌓여 있어서 작은 불씨에도 폭발한다고 말한다. 최전방에서 본 사람의 말이니 믿을 만하다. 아울러 그렇게 '폭발' 해버리는 관계라면 재해석이 가당키나 할까 싶다.
그때 6초 이론을 찾았다. 화날 때, 짜증날 때 뇌는 6초 동안 "주인님, 화를(짜증을) 낼까요 말까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 물음에 내가 답해야 한다. 6초 동안 답을 하면 전두엽이 기능하는 거고, 3초 만에 타오르면 편도체가 반응하는 거란다.
편도체는 흔히 파충류의 뇌라고 하는, 본능에 충실한 기관이다. 6초를 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내지 않는, 짜증내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6초를 선택하는 건 그저 연습의 영역이다.
6초를 찾아서 다행
"어느날 갑자기 애가 진짜 사람이 됐어!"라고 말했던 언니가 있다. 그 언니도 한동안은 본인 딸을 '동물과 외계인과 사람이 조금씩 섞여 있는 이상한 생물체'라고 말했다. 내가 언니에게 징징거리면 '시간 흐르면 사람이 되더라'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아이와 감정 골이 깊어질수록 내 시간은 흐르지 않고 쌓였다. 적체되어 쉰내가 났다. 쉰내를 풍기며 쌓이기만 하는 시간에 눌려 숨이 막혔다. 기다리는 것 대신 도망가고 싶었다.
전두엽과 편도체를 찾았다 한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쉬이 없어지진 않는다. 그랬어도 6초를 찾아서 다행이다. 언니의 말처럼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고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도 흐르겠지.
오늘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설정극을 했다. 나는 호텔리어처럼 고객님을 위한 새로운 반찬을 준비했다면서 오이지 무침을 내놨다. 그전까지 절대 안 먹던 반찬이다. 아이는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다 먹었다.
"고객님 덕에 오이지가 기뻐합니다"라고 나는 살랑거리며 인사를 했다. 아이는 웃음이 빵 터졌다. 햄과 소고기가 없이도 평온한 식탁이었다.
흐르는 시간이든, 고인 시간이든 내가 만든 순간일 것이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그곳에 잘 머물러야 한다. 나만 6초를 잊지 않으면 고인 시간이 흐를 것도 같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가볍게, 흘러갈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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