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에서 계산대에 앉아 일하는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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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근무 중인 식자재 마트에서도 원래 의자가 없었다. 그러다 근무하고 반년쯤 지났을 때 의자가 생겼다. 사실 의자라고 부르기엔 실소가 나오는 임시 의자였다. 바로 접이식 사다리 위에 상자를 덧대고 테이프로 칭칭 감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기에 우스우면 어떠랴. 다리가 떠받치는 체중을 잠깐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는 도구가 생긴 것이 계산원인 나는 기쁘기만 했다. 나는 연달아 계산을 마치고 나면 의자에 걸터앉아 한숨을 돌렸고 종량제 봉투를 낱장으로 접을 때, 담배 진열장을 채울 때에도 앉아서 작업했다.
손님이 들어올 때도 굳이 일어서지 않고 앉아서 인사를 드렸다. 손님이 올 때마다 일어서면 의자를 이용하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온 점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인사할 때는 일어서서 해야지. 그게 기본이야."
내 귀에 유독 '기본'이라는 단어가 아프게 꽂혔다. 손님이 계산대로 오시면 곧장 일어나서 응대했는데, 말 한마디에 졸지에 기본도 안 된 계산원이 되어버린 게 억울했다.
식자재 마트에서는 손님이 말 그대로 수시로 드나든다. 그때마다 일어서서 인사하라는 건 사실상 앉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손님 시선에서 보더라도 계산원이 "어서 오세요." 한 마디 하고 도로 앉으면, 서로 부담스럽고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인사하려고 한 번 일어나면 다시 엉덩이를 붙이기 어려웠고 의자를 이용하는 횟수는 자연스럽게 점점 줄어들었다.
점장님의 말이 왜 이렇게 거슬리고 머리에 맴도는 걸까. 곰곰이 궁리하다가 뜬금없이 초등학생 때 다닌 한문학원이 떠올랐다. 그때 사자소학을 배웠는데 그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父母出入 每必起立(부모출입 매필기립)
부모님께서 출입하시면 매번 반드시 일어서라.
아, 일어서서 인사하는 게 예의라는 인식의 출처가 여기였구나. 부모가 집에 오면 자식된 도리로서 마땅히 일어서서 인사할 수 있다. 하지만 손님은 부모가 아니다. 손님은 손님일 뿐이다. 왜 충효사상을 담은 뿌리 깊은 고전까지 끌고 와서 손님에게 지나친 예의를 차려야 하는가.
아무리 계산원의 앉을 권리가 공론화 되어도 실제로는 서 있는 자세를 계산원의 기본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오히려 계산원 본연의 업무인 계산 작업의 능률을 해친다하더라도 말이다. 단지 그것이 보기 좋다는 불합리한 시선 때문에 오늘도 계산원의 피로는 불필요하게 가중된다.
언젠가 서 있는 계산원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날이 오길, 그래서 손님이 나에게 "왜 서 계세요?"라고 묻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언제 봐도 서서 인사를 건네는 계산원의 행동이, 흐뭇한 친절로 여겨지는 게 아니라 어색하고 과장된 장식처럼 보이길 바란다.
이것이 오로지 계산원의 손에만 달린 미래일까. 아닐 것이다. 계산원이 '앉아서 일할 권리'를 백 번 외치는 것보다, 소비자인 손님들이 계산원이 앉아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친절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공감대를 보여주는 것이 변화를 더 일찍 앞당길 것이다.
십 년이 넘게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앉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눈 앞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참고로 2주 전부터 우리 마트엔 간이 의자가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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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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