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천암내교 위에서 바라본 임계천
안사을
한여름 강원도 해변은 국내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올해는 비교적 관광객 수가 적었다고 하나, 때마침 주말이어서 숙소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물론 예산을 고려하지 않으면 선택지는 항상 있지만, 여행을 자주 다니려면 숙소비를 아껴야하기에 저렴한 곳을 찾다보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눈을 돌린 곳이 정선군 임계면이었다. 커브를 수십 번 돌고, 서늘한 기운이 들 정도의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바다에서 50분이면 읍내에 도착할 수 있고 식당이나 숙소가 충분히 있어서 맘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항상 이용하는 숙소는 성수기 주말에도 5만원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임계에 도착한 날은 밤의 초입이었다. 시골은 가게들이 문을 일찍 닫으니 맥줏집 등을 제외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래도 가장 번화가처럼 생긴 곳을 가보니 문을 연 곳이 있었다. 차를 세우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손님은 아무도 없고 곧 문 닫을 준비를 하시는 주인장만이 뒷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죄송스러웠지만 식사가 되는지 여쭈었다. 거절 당할 각오를 하고 드린 질문이었다. 그런데 황송하게도, 돌아온 것은 함박웃음과 환대였다.
나와 아내, 우리 단 두 사람을 위해 반찬통이 열렸고 화구에 불이 올랐다. 잠시 뒤 나온 육개장은 어릴 때 교회에서 권사님들이 들통에 끓여주시던 그 맛이었고, 외할머니가 조미료 없이 손맛으로 만들어내던 그 맛이었다.
2박 3일을 머물며 총 다섯 끼니를 사 먹었다. 맛이 없는 집이 없었다. 저렴하기까지 했다. 한 고깃집은 정육점에서 직접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는 가격과 거의 같은 비용으로 삼겹살을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친절했다. 정선은 항상 올 때마다 마음이 풍족해지는데, 임계는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미소와 넉넉함이 단연코 최고였다.
임계를 떠날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바로, 아직 가보지 못한 음식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머문 날이 짧아서, 가게 주인이 휴가를 떠나서, 딱 두 명이서 다니느라 메뉴를 다양하게 시키지 못해서, 그래서 먹지 못한 메뉴가 꽤 남았다. 함께 간 아내와 다음 방문 시에 뭘 먹을지에 대해 신나게 대화했다.
이름도 산뜻한 골지천 산소길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도 참 좋았지만 계속되는 폭염에 해변을 즐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삼척에서 이곳 임계로 올라올 땐 잠시 머물 숙소를 위해서였지만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에 매료되어 다시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내리 이틀을 같은 숙소에 머물렀다.
파도가 철썩거리는 바다 대신 바위틈을 힘차게 흐르는 개천으로 향했다. 헬멧을 쓰고 로비를 나서는 우리에게 숙소 사장님은 임계천 천변길을 소개해주었다. 이곳이 처음이 아니어서 이미 아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갈 길에 대해 말씀하시니 반가웠다. 이곳 지리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길을 나섰다.
아무리 강원도 내륙이라도 올여름의 폭염을 피해 갈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여 전기자전거를 가져갔다. 참 잘 한 선택이었다. 공기는 서늘했지만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와 박치기를 하고 튀어 오른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골지천의 힘찬 물줄기와 전기자전거의 손쉬운 페달질이 만들어낸 바람이 그나마 우리의 뺨과 호흡기를 식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