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관리소 답사에 참가한 남양주, 구리, 경기지역 여성연대 회원들.
최희신
동두천 시청 앞에서 일인시위 40일, 천막농성 20일, 두 달이 지났다. 9월 14일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 오전 일찍 천막을 걷고 농성장 철수 작업을 했다. 연휴 마지막 날인 9월 18일 농성 천막을 성병관리소가 있는 소요산으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시청 농성장을 정리하며, 비에 젖고 흙 묻은 텐트를 씻고 말리며, 마음이 착잡했다. 경기도를 비롯해 국가유산청, 정부행정기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시한 '보존 및 활용에 관한 협의안'이 어느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산되었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협의 주체가 없었고 공대위에선 논의할 상대가 없었다.
2023년 봄부터 성병관리소 보존 운동에 나선 지 어느새 일 년 반이 지났다. 일 년 반 동안 가장 답답했던 것은 동두천시와 소통이 막힌 것이었다. 동두천 시장과 시의회는 제대로 된 면담조차 응하지 않았다. 시장을 10여 분 만나봤을 뿐이고 시의원들과 정담회가 한 차례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무엇보다도 시민토론회에서 나온 '시민공론장'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두천시 관광휴양과장은 공론장 개설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하고 제안서까지 접수받았지만, 갑자기 담당 과장이 바뀌었다. 공론장을 통해서 성병관리소 철거 여부를 고민할 것처럼 말한 전임 과장은 퇴직을 앞둔 사람이었다.
성병관리소 철거와 보존 논란이 제기된 이후, 지금까지 일 년 반이 지나도록 동두천시와 시민들 간에 '논의의 장'은 열린 적이 없다. 보존을 바라는 시민단체에서 아무리 토론을 하자, 민주적 절차를 거치자고 해도 동두천시의 태도는 완강했다. 특히 동두천 시장은 "보존 불가" "철거 집행" 방침에 변함이 없었다. 나아가 시의회 의장의 발언이나 자세를 보면 마치 자신이 시장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침내 지난주 9월 11일, 동두천 시는 성병관리소 철거 실시설계용역 수의계약(마감 9. 30) 현황을 공개했다. 설계용역이 끝나면 곧바로 10월 초에 철거공사 입찰에 들어갈 것이고, 입찰 공고기간 일주일이 지나면 입찰개시일엔 공사업체가 선정될 것이다. 그럴 경우 10월 둘째 주말 전후에 철거공사가 가능해진다.
"성병관리소 보존은 이대로 물 건너갔다."
"우리 힘으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성병관리소 철조망 앞에서,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동두천 지역운동과 시민운동을 해온 한 여성활동가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절망과 체념을 넘어선 경계 밖의 슬픔이 서려 있었다. 언뜻 스쳐간 그 슬픔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를 놓치고 말았다. 어쩌면 그녀는 오래전부터 폐허에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폐허에 선 그녀의 발밑에 벽돌조각 부서지는 소리, 누군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 한숨소리, 울음소리, 바람소리, 손 내밀고 떨어지는 낙엽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따라나선 나도 역시 힘없는 표정으로 돌아설 날이 올 테지만... 슬픔은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슬퍼하는 '슬픔에게만 슬퍼지는 것'이리라. 소요산 기슭에 슬픈색이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