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여론조사 결과 자료작년 9월~10월 성병관리소 존치 및 철거에 대한 주민여론조사 결과 자료
동두천시
위의 표에서 동두천 시민설문 분석결과에 나타난 연령대와 활용 시 선호방법을 눈여겨 봐야 한다. 20대에서 40대는 성병관리소 시설 존재를 반수 정도가 모르고 있다. 50~60대는 대부분 알고 있다. 하지만 시설처리방법에서 보면 20대는 존치 응답이 46.9%이다. 절반의 청년세대는 보존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독 40대 이상 50~60대에서 철거 찬성 비율이 높다. 그 이유는 시에서 선전하는 '흉물 이미지' 인식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존치 시 활용 설문에서는 현재 성병관리소 위치에 리모델링 후 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답변이 63.1%로 압도적이고, 원형 그대로 수리 및 보존하자는 답변도 34.3%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설문조사 결과는 기성세대를 제외한 젊은 세대는 철거를 반대하고 보존하자는 입장인 것이다. 때문에 동두천시와 시의회 의장이 말하는 '시민들 대다수 철거 찬성'은 여론을 곡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두천시와 시의회 의장에게 '시민'이란 누구일까? '그들의 시민'이 따로 있는 듯 하다. 이름하여 '동두천지역발전범시민대책위원회'가 그들의 시민으로 행동하고 있다. '범대위' 안에는 동두천 지역 내 행세깨나 하는 모든 단체들이 수백 개 결합되어 있다. 이들은 성병관리소를 철거해야만 동두천 지역경제가 살고 소요산관광지 개발이 가능하고 이에 따른 상권 회복과 경제적 이득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역경제 개발의 걸림돌이 왜 하필 '성병관리소'일까? 관광객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성병관리소' 때문인가? 현재 성병관리소는 소요산 입구 주차장 숲 속에 숨어 있다. 밖에선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그곳에 성병관리소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럼에도 성병관리소가 개발을 가로막고 지역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범대위에 속한 단체들, 예컨대 자유총연맹, 상가번영회, 예총, 여성단체연합회 등은 단지 "성병관리소 저거 보기 싫다,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시설이니 부끄럽다, 빨리 없애고 그곳에 상가를 짓고 호텔 같은 숙박시설을 짓는 게 낫다, 그래야 장사도 잘 되고 관광객들이 많이 올 것이다"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있다.
과연 성병관리소를 없앤다고 해서 이들이 원하는 대로 외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까? 정말 그건 근시안적 생각이다. 어쩌면 현실 파악을 이리도 하지 못하고 있는지 개탄스럽다. '개발'하면 금방이라도 무슨 이득이 생길 듯이 기를 쓰고 오로지 성병관리소를 철거하자는 그들은, 입버릇처럼 말하는 '지역발전' 외엔 아무런 고민도 없다. 고민이 없기에 실제로 '지역발전을 위한 대화'도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미끼를 물고 죽어도 놓지 않는 물고기와 같다. 그들에게 인생은 욕망일뿐 의미가 아닌 것이다.
범대위 단체들이야 그렇다치고, 동두천시는 아름답고 예쁜 소요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발상부터 잘못되었다. 소요산에 그 어떤 시설을 꾸미고 관광단지를 조성한다 해도 자연 환경만 파괴할 뿐 관광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모노레일을 놓는다고도 하는데, 사람들이 설악산으로 가지 그다지 높지도 않은 소요산으로 케이블카 타러 올 리가 없다. 반려견 공원도 만든다는데 강아지 데리고 누가 얼마나 오겠는가. 천문대도 만든다는데 가볼 만한 천문대는 많다. 그런 시설들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지역 상권을 살릴 만큼 많은 사람들이 유입될 만한 게 못 된다.
성병관리소 부지에 상가를 짓는다고도 하는데, 상가 개발 역시 오래 가지 못한다. 이미 소요산 입구에 '축산물브랜드타운'을 건립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망하고 말았다. 문 닫은 축산타운을 보면 어떻게 여기에 쇠고기 파는 고깃집 지을 생각을 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소요산 등산객들은 나이 든 노년층이 건강 삼아서, 산책 삼아서, 전철 타고 오가는 곳이다. 그런데 축산물타운을 지으면 사람들이 고기 먹겠다고 소요산을 찾아올 것이라는 엉뚱한 짓을 했다.
개발예산확보, 마스터플랜도 없이 '지역발전범대위'와 결합한 동두천시
가장 큰 문제는 소요산관광지 확대개발사업의 예산확보 방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개발계획에 따르면 3700억의 예산이 잡혀 있는데, 소요산개발이 무슨 국가사업도 아니고 인구 8만 명을 조금 상회하는 동두천시가 무슨 수로 수천억 대의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소요산개발사업'은 동두천시가, 정확히 말하자면 동두천 시장이 동두천 주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아무런 예산도 없이 개발을 하겠다고? 개발에 대한 마스터 플랜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꾸 주민들을 부추기고 지역발전 운운하면서 성병관리소 철거가 마치 소요산 개발의 시작인 것처럼 말한다. 성병관리소 철거가 동두천 지역 경제살리기 사업의 생사가 달린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이다. 그래서 보존과 활용 방안엔 귀를 틀어막는다. 공론화 과정이나 시민들과의 민주적 숙의절차도 무시한다. 요지부동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무조건 철거를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이것은 지자체 단체장의 정치적 선택이다. 동두천 초임 시장(박형덕)은 재선을 하기 위해서라면 뭔가 개발 호재를 제시해야만 하고 그 기반이 바로 '소요산확대개발사업'이다. 창의적인 발상이 없는 시장으로서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동두천 시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한 가지 있다.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도 지역 발전을 위한 개발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병관리소를 보존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공익적으로 훨씬 더 크다는 것이고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이 삽질보다는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자는 것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
소요산은 북한산이나 도봉산이 아니다. 전철이 닿는다고 해도 서울에서 족히 2시간이 걸려서 접근성이 그리 좋지도 않다. 설령 롯데월드가 들어선다 한들 사람들이 서울로 가지 굳이 소요산까지 오진 않는다.
일례를 하나 들겠다. 구파발에서 송추 가는 길목에 북한산성 입구가 있다. 그곳은 예전에 북한동 마을 전집, 막걸리집 같은 가게들이 내려와 장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스타벅스 북한산점'이 생기자 분위기가 일거에 변했다.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주말이면 차들이 수백 대 진을 칠 지경에 이르렀다. 떠들썩하게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개발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된다. 특히 젊은층에겐 더욱 그렇다.
만약 소요산에 '스타필드'가 들어선다고 해보자. 노인층 등산객 중심인 소요산은 젊은이들 세대의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동두천엔 해마다 락 페스티발이 열린다. 자연스레 이를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 동두천시 노인 인구 비율이 2할이 넘는다고 하는데, 전국에 널린 관광지를 지역 특화된 사업이나 문화적 전략도 없이 위락단지, 상업시설 위주로 개발해 봤자 사람들은 외면한다. 특히 젊은층을 모으지 않으면 활기 있고 생동하는 미래지향적 도시가 될 수 없다.
동두천은 '동두천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기지촌, 미군, 위안부 등으로 점철된 동두천의 지나온 역사를 스스로 버리고 흔적을 지운다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동두천을 숨기고 동두천의 이름을 지우려 하고, 자꾸만 부끄러운 이름으로 치부한 '동두천'을 떳떳이 돌려놓아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것이 곧 미래세대인 동두천의 청년들에게 기성세대가 남겨줘야 할 몫이다.
아니 성병관리소 존재를 모르는 이 땅의 모든 청년세대에게 알려줘야 할 책임이다. 그러면 청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가 감춘 상처를 씻어내고, 상처를 보듬고, 상처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지금 동두천에선 개발이니 경제발전이니 목청만 높이는 '지역발전범대위'가 동두천 시민들을 대표하는 집단인 양 행세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 사람들은 동두천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성병관리소 보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동두천, 그 이름을 부르고 싶어한다. 동두천은 내 이름이고 우리 국민의 이름이고 대한민국이라는 분단된 역사의 이름이고,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소망이 담긴 이름이기 때문이다.
"동두천, 내 이름을 불러줘" 간절한 이 말은 <2018년 경기북부 마을아카이브 프로젝트 : 동두천-평화를 향한 역사> 결과물로 발간한 책자의 제목이다. 이 자료집을 보면 동두천 기지촌의 형성 과정과 미군들의 모습, 기지촌 여성들의 생활상, 성병관리소의 실상들이 다양하게 채록되어 있고 인물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 책자에서 동두천의 이름은 그저 동두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30년 전에 있었던 기지촌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의 문제가 집약된 동두천을 낱낱이 펼쳐 보인다.
문득, 성병관리소 철거 논란을 두고 미국이나 유럽 같으면 이와 같은 문제에 시민들이 결코 손을 놓고 있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양한 시민여론이 형성되고 그 여론을 바탕으로 한 정치민주화를 도모하는 서구의 정부는 성병관리소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 단지 지역갈등 문제로 바라보고만 있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과 의원들이 가장 먼저 달려오고 보존에 발 벗고 나섰을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 한국은 경제는 성장했지만 민주주의 성숙도가 떨어진다. 그것은 한국의 지방자치 행정가들의 수준이 한심한 데서 기인한다. 권력을 잡으면 자기 방식대로 모든 일을 해도 된다는 착각을 하는가 본데, 이러한 정치 아래서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들이 정말 자랑스러운지 되묻고 싶다. 거듭 강조하지만 동두천에 마지막 남은 성병관리소는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 현장이고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동두천의 지역 문제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역사를 누구 마음대로 철거하려 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