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생가장독대 옆에 <오매 단풍 들것네> 시비가 있다.
김재근
누이가 장독에서 장을 푸고 있었다. 새빨간 감잎 하나 날아왔다. 깜짝 놀라,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9월 16일, 영랑생가 장독대에 비와 구름과 햇살이 오고 갔다. 날씨는 무더웠고 감나무는 파랬다. 단풍은 멀리 있었다.
강진에 오면 습관적으로 영랑생가부터 찾는다. '경로의존성'이라고 탓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우연히 어떤 길에 들어서고 나면 더 좋은 길을 알아도 가던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개 여행 패턴이 그러한 건 아닐까.
영랑생가에서 고향집에 온 듯한, 포근한 어머니 품에 안긴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강진읍 뒷산 아래, 집 뒤로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 숲과 앞쪽 담장 큼지막한 은행나무와 마당 옆 해묵은 동백나무가, 초가와 잘 어울렸다. 안채와 사랑채도 넉넉하여 답답하지 않았다.
영랑생가 -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
영랑 김윤식은 1903년에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 중 서울에서 포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서정시인이면서 독립운동가였다. 17세 때 강진 3‧1 만세 운동 모의 혐의로 옥살이를 하다가 어린 학생 신분이라는 점이 고려돼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1948년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가기 전까지 이 집에서 45년을 살았다. 생전에 80여 편의 시를 발표하였는데 60여 편을 이곳에서 썼다. 이사 후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것을 1985년 강진군이 사들여 본래 모습으로 가꾸었다.
추석 연휴를 맞아 나들이객이 많았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집 안 가득 추억이 넘실댔다. 모란을 이야기하다가 양희은의 <하얀목련>을 흥얼거렸고, 마루에 앉아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시를 읽으며 학창 시절을 추억하기도 했다. 연륜이 깊어 보이는 여인은 한동안 부엌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