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군의 한 논 벼가 쓰러져 있다.
이재환
수확의 계절 가을에 들어서는 마당에 농가의 시름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의 저물가정책에서 물가지수가중치가 높지 않은 농산물이 매번 희생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농산물 가격은 농업소득의 결정변수입니다. 농업경제학에 풍년기근(豊年饑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풍년이 들면 가격이 하락하고 농가 실질소득이 감소해 더 가난해진다는 풍년의 역설과 같은 의미입니다. 소득이 감소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농가가 소비할 농산물까지 판매함으로써, 공급량이 증가해 가격은 더 떨어지게 됩니다. 거기에 무분별한 저율관세할당(TRQ)으로 농산물 수입량을 늘려왔습니다. 말 그대로 악순환입니다.
농산물 가격은 자연 기후적인 영향에 따른 생산 불안정, 비탄력적인 수요, 부피가 크고 부패성이 강하다는 등의 특성 때문에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름의 역대급 무더위와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채소류가 제대로 생산이 안 돼 추석 매스컴에 시금치, 배추 가격 등이 전파를 탔습니다. 가을이 되면 새로 파종한 배추가 생산돼 가격이 다시 내려갑니다.
농산물가격의 극심한 변동은 생산자 소득을 불안정하게 하고, 소비자 잉여를 감소시킵니다. 가격 안정을 위한 품목별 적정 생산, 수매 비축, 가공 등 다양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심상치 않은 쌀값 문제
올해도 우리의 주식인 쌀의 산지 가격(산지 쌀값)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산지 쌀값은 쌀 생산 농민이 받는 생산자가격입니다. 산지 쌀값이 80kg당 17만 원대로 하락하여 국회가 시끄럽습니다. 지난해에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1호인 양곡관리법 개정 파동 때, 전임 농식품부장관이 양곡관리법 반대 명분으로 약속한 산지 쌀값 20만 원 보장 약속을 현재 장관이 뒤집어엎은 것입니다.
2020년부터 쌀 관련 제도가 바뀌면서 산지 쌀값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른 쌀 시장개방 과정에서, 쌀 가격과 소득 안정을 목표로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쌀 소득 보전 직불제를 시행했습니다.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고정직불금으로 1ha당 100만 원을 일괄 지급하고, 변동직불금은 쌀 수확기에 산지 쌀값이 정부가 설정한 80kg당 목표가격에 미치지 못한 경우 차액의 85%까지 지급하는 것입니다. 목표가격이 산지 쌀값 안정의 버팀목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2020년부터 쌀 소득 보전 직불제가 공익형 직불제로 바뀌면서, 이런 가격 안정 장치가 없어졌습니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결과, 매년 외국으로부터 41만여 톤(우리나라 연간 소비량 360만여 톤의 약 11%)을 의무 수입해 국내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금 산지 쌀값 하락의 주된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쌀 가공식품의 원료 대부분은 수입쌀이고, 김밥도 수입쌀을 사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공깃밥 1천 원은 수십 년 전부터 변함이 없습니다.
국회 앞에 높인 과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