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밤나무, 밤송이, 밤톨
김은상
이젠 뒤뜰에 밤나무를 키운다. 아니 십수 년 자란 나무는 저 혼자 알아서 크고 열매 맺는다. 집주인이 누구고 어떤 사람인가 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러면 이 밤송이는 불로소득인가 아니면 임대소득인가? 헨리 조지에 따르면 자연이 준 토지를 특정한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범죄다.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불로소득이라고 고백하려다 얘기가 엇나갔다.
그런데 사실 내가 궁금한 것은 땅보다 가지 끝에 있다. 밤꽃이 핀 것은 봤는데 언제 어떻게 가시 돋친 열매로 변해가는지 그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사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하얀 주렴 모양의 밤꽃은 수꽃이다. 정확히는 암수 한 그루이니 그 속에 숨은 암꽃을 추적해야 한다. 밤톨을 완성하는 것은 암꽃이 아닌가. 궁금함이 한결같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마음을 놓아버리니 때를 놓치고 만다.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생으로 먹든 삶거나 구워 먹든 떫은 속껍질, 보늬만 손쉽게 벗겨낼 수 있다면 구황식품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알고 보니 품종에 따라 좀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다르다. 수분 함량이 많은 '병고밤'은 생밤으로, 단단하고 겉껍질이 얇은 '옥광'과 '대보'는 군밤으로, 속껍질이 잘 벗겨지는 '수락밤'은 삶아 먹기 좋다고 한다. 어쩌면 밤 막걸리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밤톨이 작년만큼 실하지 않다. 작년엔 한 송이에 굵은 밤알이 한두 개 들었었는데 올핸 대개가 세 개씩 들었다. 개수보다 크기가 중요한데 말이다. 기후변화에 치이면서도 열매를 열고 익은 것만도 다행스럽다. 앞으로 이보다 더 심각한 여름이 온다고 하니 잘 견뎌내리란 기대의 말도 함부로 못 하겠다.
폭우와 폭염에 초가을이 폭삭했다. 냅다 가을 깊이 들어섰다. 계절 변화의 징후가 없던 가을은 처음이다. 마당엔 막자란 풀들이 어느 해보다 무성하다. 숨통을 터주고 나니 도깨비바늘이 옷깃에 들러붙어 살을 찌른다. 내년엔 내 피부에서 싹이 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가을이라고 한 철 꽃무릇이 만발하고 태양이 순해지니 그나마 반갑다.
가을을 느끼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밤나무 한 그루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숙한 밤나무는 더 이상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다. 스스로 다른 생물에게 베푸는 자연이고 계절의 변화를 몸소 보여주는 지표다. 매년 풍성한 열매를 주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아파트 조경수로는 밤나무를 본 적이 없다. 이왕 이렇게 시골에 사는 김에 그 충만함을 실컷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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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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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실감한다, 땅바닥 깔린 보물을 줍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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