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24년 남아공 국제공정무역마을 컨퍼런스 리플렛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
두 번의 컨퍼런스를 통해 국제 공정무역 도시와 마을들이 어떤 고민과 이슈를 안고 있는지,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살펴봤다. 유럽의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태동한 공정무역, 그리고 공정무역마을 운동은 현재까지는 주로 유럽 도시와 마을들이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있어 최근의 화두는 공정한 공공조달(fair procurement), 각 지역의 맥락에 맞게 공정하면서도 기후 친화적인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것(local, green & fair), 그리고 유치원부터 초중고 및 대학교 교육과정과 깊이 있는 연계를 통해 다음 세대로의 전승(young generation & connectivity) 등을 들 수 있다.
프랑스 모든 음식점, 최소 50% '지속가능한' 식재료 사용 의무화
이러한 인식의 저변에는 2010년대 이후 시민들의 시대적인 요구가 단순히 경제적인 성장을 넘어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조달 측면에서도 기존에 상당 기간 유지되어왔던 '최저가 입찰' 기준에서 사회적, 생태적인 고려가 점점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2023년 스위스 컨퍼런스에서는 프랑스의 30개 공정무역 단체들의 연합조직인 공정무역 프랑스(Commerce Équitable France)의 내셔널 코디네이터의 발표가 선풍을 일으켰다. 2021년 프랑스 정부가 제정한 '신기후법'이 본격 발효되면서, 2023년부터 모든 음식점들은 최소 50%의 '지속가능한(sustainable)' 제품 혹은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친환경, 유기농, 공정무역, 탄소중립 등이 해당된다.
공정한 소비의 확산: 유럽 정부의 공공조달 전략
지역 맥락에 적합한 방식으로 공정하면서도 기후 친화적인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은 특히 유럽의 작은 마을과 소도시의 농부들과 장인, 소상공인들과 공정무역의 결합 모델로 나타난다. 벨기에의 공정무역 도시 겐트(Ghent)는 오래전부터 초콜릿 장인들로 유명한 곳이다. 공정무역 카카오를 재료로 하여 지역의 초콜릿 장인들이 만든 '시티 초콜릿(city chocolate)'은 도시의 이름을 단 고급 패키지로 포장되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판매된다.
또한 중세시대부터 양모 등 섬유산업지대로 번성한 곳이다. 최근 겐트시는 재사용과 재활용, 폐기물 감축 등 순환경제를 촉진하기 위해 섬유, ICT, 식품, 천연광물 등에 대한 '지속가능한 조달'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시청 직원들의 업무용 의류, 신발, 장갑 등이 인권 및 노동조건, 환경에 대한 영향의 최소화 등 사회적으로 책임 있고 투명한 공급망을 통해 제공될 수 있도록, 지역 내 관련 업체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집중한다. 이에 따라 직원들의 업무용 휴대폰 역시 공정무역 인증받은 '페어폰(Fairphone)'이 제공된다.
학교에서 시작되는 공정무역 교육과 청소년 주도의 캠페인
하지만 무엇보다 유럽의 다양한 공정무역 도시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정무역 교육과 캠페인이다. 공정무역마을운동의 시작은 영국이었지만 현시점에 가장 많은 공정무역 도시와 마을, 학교가 있는 곳은 독일이다. 2009년 9개에서 시작한 독일의 공정무역 마을은 2024년 현재 890개에 이른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시, 군 단위에 해당하는 규모의 크고 작은 공정무역 마을들이 16개 연방 주에 골고루 퍼져있다.
뿐만 아니라 963개 공정무역학교, 46개 공정무역대학이 있다. 이들 학교에서는 지리, 역사, 경제, 음식과 영양, 시민성, 지속가능성 등의 주제에 공정무역을 접목하여 학습한다. 공정무역 단체들과 교육 전문가들이 결합하여 정규 교과과정과 연계하여 단계별로 교재를 만든다.
커피, 카카오, 바나나, 사탕수수 등을 재배하는 생산자들의 실제 사례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학생들이 교육받은 내용을 직접 다른 학생과 부모, 교사, 시민들에게 교육받은 내용을 재교육하거나 캠페인 형태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한다. 학교 식당에서 공정무역 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제공하고, 학생들이 쿠킹클래스를 통해 직접 요리에 참여한다.
일상이 된 공정무역, 시장 확대의 원동력
마을과 도시에서의 공정무역 캠페인들은 이러한 학생들이 지역 내 공정무역 가게, 자원봉사자, 공정무역 단체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다. 독일 전역에 69만 명의 학생들이 공정무역 학교에 다닌다. 독일 국민 8400만 명의 절반이 공정무역마을에 살고 있다. 공정무역 독일(Fairtrade Deutschland e.V.)은 이것이 단순히 인구 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손꼽히는 독일의 경우 최근 인플레이션과 재정적 불안정성 증가 등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공정무역 제품 매출은 2012년 5억3300만 유로(한화 8000억 원)에서 2023년 25억6000만 유로(한화 3조 8000억 원)로 다섯 배 성장하였다. 독일 소비자 1인당 연간 공정무역 제품 구매액은 30유로(한화 4만3000원)를 넘어섰다. 전국 단위에서 공정무역마을로서의 자격을 2년마다 갱신하며 일상 속 소비와 실천을 확장해 나감에 따라, 공정무역 운동을 성장시키는 견인차가 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도전, 공정한 경제 육성을 위한 노력
올해 컨퍼런스가 열린 남아공의 드라켄슈타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산지의 한가운데 자리한 지역이다.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공정무역 와인의 생산지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 도시는 과거의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t)로부터 벗어나 공정하고 차별 없는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프리카 최초의 공정무역마을인 이곳에서 개최되는 컨퍼런스에 걸맞게 'Cultivating Equitable Economies'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었다. '공정한 경제 육성하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실제로 컨퍼런스에서 발표자나 토론자로 나선 아프리카의 공정무역 활동가들은 지역의 농부들, 소상공인과 장인들, 사업가들을 기반으로 한 '메이드인 아프리카 브랜드' 개발과 품질, 마케팅, 지역 관광 프로그램과의 연계 등을 강조했다.
작년 스위스 컨퍼런스에서 발표자로 나선 가나의 초콜릿 기업 '페어아프릭(fairafric)'의 청년 활동가 메이퀸(Mayqueen)은 아프리카에서 기후 친화적인 직업 1만 개를 만들어내는 것이 자신들 기업의 미션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