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모임청소부 투쟁 주축들의 모임. 우측부터 유재향, 정진동
청소부 모임
잔뜩 낙심한 얼굴을 한 청주시 해고 청소노동자 유재향과 최명식이 정진동을 찾아왔다. 정진동은 순간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또 무슨 일이 터졌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작년 6월 사직동에 청주도시산업선교회를 시작한 이후 긴장의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창립 예배를 본 이후 단 한 번도 두 발 뻗지 못한 채 잠을 잤다. 청주시청 청소부 투쟁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박정희 대통령 연두 순시 기습시위 모의 사건을 기점으로 상황이 급속히 반전됐다. 자신과 유재향, 최명식이 시위 계획 후 도피하자 청주경찰서와 청주시는 벌통을 건드린 것처럼 난리가 났다.
보통 대통령 연두 순시는 음력설 직후에 이뤄졌었다. 그렇기에 1974년에는 1월 24일 이후부터 연두순시를 할 계획이었다. 청와대와 청주경찰서의 협박(?)으로 청주시는 청소부 문제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갈림길
청소부들이 요구한 임금인상 문제는 일당 600원에서 650원까지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휴일제도 도입과 퇴직금 문제도 원만히 해결됐다. 채O환 청주시장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입건된 상황이라 제도적 도입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고자 복직 문제였다. 투쟁이 장기화되자 정운탁과 이정우는 원직복직이 아닌 퇴직금 받기 운동으로 투쟁 방향을 선회했다. 하지만 유재향과 최명식은 원직복직 투쟁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청주시장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 유재향과 최명식을 복직은 시키되 원직으로는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꼼수를 쓴 것이 '무허가 단속반'으로 복직시키겠다는 것. 무허가 단속반이라면 시민들로부터 원성을 살 일만 생기는 자리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탈법과 불법으로 지은 건축물 등을 때려 부수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재향과 최명식은 '복직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 것이다. 자기가 살자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청주시로부터 무허가 단속반으로 복직하라는 통보를 받은 유재향과 최명식이 우울한 표정으로 정진동을 찾은 이유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정진동은 잠시 고민했다. 나머지 현안이 모두 해결된 상황에서 두 사람이 복직을 거부하면 힘겨운 싸움이 될 게 분명했다. 잠시 후 정진동은 무릎을 '탁' 쳤다.
"복직하세요." "네?" 정진동의 시원스러운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유재향과 최명식이 반문했다. "일은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정진동은 무허가 단속반원이라고 무조건 시민들에게 민폐를 끼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러분들이 시민을 위해서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면 오히려 그들한테 박수를 받을 겁니다." 즉 민중의 지팡이로서의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두 사람은 정진동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청소부 투쟁 과정에서 정진동 목사에 대한 믿음이 확고히 형성됐기에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1974년 2월 9일 유재향과 최명식이 청주시청 무허가 단속반으로 복직됐다. 약 한 달 후인 3월 5일에 청소부 문제가 최종 타결됐다.
정진동과 청소 노동자들은 덩실덩실 춤을 췄다. 8개월여 만에 노동자들이 완전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정진동은 그간 연대의 손길을 뻗어 준 이들에게 일일이 감사 편지를 썼다.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요?"
아침 일찍 시청 정문을 지나친 유재향과 최명식은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다. 그들이 지금 가려고 하는 곳은 미적거려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상급자들이 그들의 목적지를 알면 당장 중지 명령을 내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함마(대형 쇠망치)'를 챙겨 법원, 검찰청이 위치한 수곡동으로 향했다. 제보를 받은 곳으로 갔다. 아무개 검사 집이었다. 그 집은 2층 건물이었는데, 2층을 증축하는 과정이 무허가였다. 즉 불법 건축물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청주시는 그 집이 불법 건축물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수수방관했다. 1970년대 중반에 검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였다. 사법고시를 합격해 검사, 변호사, 판사에 임용된 20, 30대 청년들에게 "영감님"이라며 허리를 90도 꺾던 시절이었다.
'텅텅' 쇠망치질 몇 번에 시멘트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쪽 벽이 무너졌다. 잠시 후 나타난 소년이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 누구예요?" "..." 유재향과 최명식은 소년의 거친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소년이 다시 고함을 쳤다.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요?"
그러자 최명식이 한마디 했다. "느(너) 아부지 쪼기서 일하잖어" 그러면서 턱을 검찰청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소년이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지한테 이를 거에요." 최명식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라."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이 전화기 수화기를 들었다. 소년이 씩씩거리고 있는데 잠시 후에 집주인이 나타났다. "당신들 뭐요? 왜 남의 집을 함부로 부수는 겁니까?" 유재향이 목에 건 신분증을 검사 앞에 들이밀었다. "청주시청 무허가 단속반입니다"
검사의 얼굴이 노래졌다. 최명식이 "2층이 불법 건축물이네요. 그래서 원상복구하는 겁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검사님~"이라며 사족을 붙였다. 맨 끝의 '검사님'은 일부러 말을 늘였다.
아무리 검사라지만 자신의 불법행위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할 말이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검사가 최명식에게 담배를 건넸다. "고생이 많소. 담배 한 대 피우슈."
담배를 건네받은 최명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양담배였기 때문이다. "야~ 물 건너온 담배네. 기념으로 가져가야겠네"라며 담배를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검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시 양담배는 규제 대상이었다. 그런 시기에 현직 검사가 양담배를 핀다는 것은 언론의 몰매를 맞을 일이었다.
더군다나 불법 건축 문제까지 공론화되면 자신의 모가지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무허가 단속반원 두 사람의 쇠망치질은 이어졌다. 쇠망치질에 날리는 것은 시멘트 가루만이 아니었다. 검사의 한숨 소리도 함께였다. 이 사건 이후 청주시청 무허가 단속반원은 각 동별로 분산 배치됐다.
부러진 대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