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해 보면,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또래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걸 남달리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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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공부를 잘해 고등학교 가서 이과 계열을 선택하고, 대학은 '의치한약'으로 진학하는 건, 어느새 모두가 꿈꾸는 엘리트 코스이자 우리 교육의 불문율이 됐다. 모두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며 시샘하며 두둔하느라 바쁘다. 과연 그것이 개인의 적성에 부합하는 선택인가는 관심 밖이다. 되레 적성도 살다 보면 맞춰지게 된다고 눙칠 뿐이다.
회상해 보면,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또래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걸 남달리 좋아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나눠주는가 하면, 시험에 대비할 때도 부모를 앞에 앉혀 놓고 이해가 가는지 들어보라며 강의하는 식으로 공부하곤 했다. 부모가 아닌 교사의 눈으로 봐도, 그의 노트 정리는 일품이었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동아리를 꾸린 뒤 환경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비교과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이라 활동적인 직업이 제격이라 여겨왔지만, 아이들과 부대끼며 미래를 어루만지는 교사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싶었다. 진정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인지가 진로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보다 여전히 시험 성적만으로 줄 세워 교사를 임용하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아. 임용시험을 위해 몇 년 동안 고시원에서 두문불출 공부만 했다는 선생님들의 경험담이 조금 충격적이었어. 차라리 그 시간 교육 실습을 하는 게 추후 교직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범대로 진로를 정하고 난 뒤, 호기심에 교사 임용 과정을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시험 성적으로 과연 교사의 자질과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실상 '해묵은' 문제 제기였다. 기실 이는 시험 성적으로 서열을 정하는 것만이 공정하다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관성을 극복하지 않는 한 일점일획 손댈 수 없는 선발 방식이다.
부작용이 크다는 건 알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는 식이다.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이른바 '고시 낭인'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임용시험에 목매단 예비 교사들이 바통을 넘겨받은 모양새가 됐다. 시험 준비에 영혼이 피폐해졌다고 토로하면서도 그들은 교사 정원의 감소를 우려할 뿐, 선발 방식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는다.
맹목적인 '시험 중독 사회' 대한민국
기성세대는 물론, 철부지 초등학생조차 시험 성적에 따른 차별 대우는 정당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상황에서 현행 임용시험 체제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건 허황하다. 같은 조건으로 한날한시에 치르는 시험이 아니면 믿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치는 마당에 대안이 있을까 싶다. 이러다 '수능 1등급 출신 교사'가 '지역 균형 선발 출신 교사'를 얕잡아볼 날이 올까 두렵다.
요원할지라도, 아이의 지적처럼 교사의 임용 방식은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시험 성적으로 줄 세워져 뽑힌 교사가 아이들의 시험 성적 향상에 목매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시험 성적을 올리고 진학 실적이 좋은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우대받는 현실은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가치관만 횡행하는 우리 교육의 민낯이다.
우리나라는 '능력주의'라는 말로는 부족한, 맹목적인 '시험 중독 사회'다. 일단 '시험 중독'에 빠지면 여행과 영화 감상은커녕 독서마저 시간 낭비로 치부하게 된다. 교양 쌓기는 기약 없이 유예되고, 그렇게 교단에 선 교사는 아이들에게 '시험 중독'이라는 몹쓸 병을 전염시키게 되는 무한루프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따위의 금언은 병증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버스가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지만, 딸아이에게 요지경 속인 교사 임용 과정에 대해 미리 들려주었다면, 지레 겁먹고 사범대 진학을 포기했을까. 아이가 대학에서 지금껏 그래왔듯 임용시험 외길에서 '시험 중독'에 허덕일지, 아니면 변화와 개혁을 부르대며 임용시험을 거부할지, 딸아이의 성격상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수능을 꼭 한 달 남겨둔 지금 교사로서, 아빠로서 심경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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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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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원서 사범대에 몰빵한 딸...교사 아빠의 솔직한 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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