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카손 성남쪽으로 피레네산맥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스페인이 있다.
유종선
나로선 나름 멋진 순간으로 준비했던 문장이었다. 솔직히 설레는 상황 아닌가. 저 아스라히 보이는 산 너머로 우리가 며칠 전에 있던 다른 나라, 다른 도시가 있는 것이니까. <라이온킹>에서 무파사가 심바에게 프라이드 랜드를 설명하는 느낌이 날 법도 한데.
그러나 아들은 두리번 두리번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아무 감정 없이 한 마디 한다. '와 그렇구나'. 이 봐 친구, 영혼 좀. 여행하며 우주에게 습득된 것은 아빠가 뭔가 보여주거나 가르쳐주겠다고 할 때에는 듣는 척이라도 해야 빨리 지나간다는 점인 것 같다. 아, 사진을 찍어주려 할 때 빨리 포즈를 취해주어야 된다는 점도.
그래도 중세 유럽 천년의 고성은 운치가 좋았다. 카르카손 성은 꼭 보드게임이 아니더라도 로망에 가까운 성이다. 성문, 해자, 뾰족한 지붕의 탑들, 성벽이 판타지 영화나 역사 영화의 배경 같다. 전망도 나즈막한 시골의 모습이라 중세로 시간 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기원 전부터 짓기 시작하여 1000년 이상의 증축으로 모습을 갖추어 나간 카르카손 성은, 19세기에 이르러 비올레 르 뒥이라는 건축가를 통해 복원 작업을 거쳐 지금의 번듯한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시간의 낭만을 느끼게 하는 관광지들은 대개 이처럼 현대의 치밀한 복원과 관리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