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자리잡은 감나무가로등 아래 노란 감이 성탄절에 반짝이는 작은 전구만 같다. 푸근하고, 아름답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김은아
내친 김에 비탈진 골목을 따라 동네 마실도 나가본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무와 흙, 그리고 바람의 냄새가 있다. 집집마다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들이 혼을 쏙 빼놓는다. 예전에는 마당 있는 집 치고 감나무 한 그루 없는 집이 없었는데... 그립다.
방학 때 할머니 댁에 가면 마당에 감나무는 두세 그루는 항상 있었다. 가을이면 감 따 먹고 겨울이면 곶감을 기다렸다. 도시에서 자라 우리 집엔 감나무가 없었지만, 늘 그 감나무가 그리워 방학을 기다리곤 했었다.
먹을 과일이 풍성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학교를 벗어나 뛰어놀 수 있었던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에게 감나무는 고향이자 어머니와 같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가을에 노랗게 익다가 추위가 오면 볼그르르하게 발개지는 감.
전봇대 아래로 감들이 노란 전구처럼 반짝인다. 이 감들이 한두 달 있으면 모두 홍시로 변할 테지. 낯선 도시에도 찾아보면 예상치 못한 발견의 기쁨과 기억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모두 다 말이다.
예상치 못한 소소한 기쁨
"야! 김 밥풀! 이리 안 와?"
한참 감나무 구경에 넋을 잃고 있는데 어린 꼬마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온다. 하얗고 곱슬곱슬한 털이 반지르르하게 난 비숑 프리제 강아지다. 강아지가 갑자기 날 보고 달려오니 강아지 가족인 꼬마 아이가 놀라서 쫓아온 것이다. '김 밥풀'이라고 하면서!
목줄이 없었지만, 다행히 개를 좋아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밥풀떼기가 계속 따라오는 것이 문제일 뿐. 결국 밥풀떼기는 보호자인 아이의 아버지한테 끌려가고 말았다. 소소한 기쁨이다.
누가 어디에 사는지 다 알 법한 동네다. 오래된 주택들이 바지런하게 들어서 있고, 주차공간도 질서 정연하다. 그래서일까? 목줄 안 했다고 누가 뭐라 하는 사람들도 딱히 없었다. 아마도 밥풀떼기가 자주 다니는 길목인지도.
사노라면, 삶이 서사인 것을
작은 기억 하나는 도시에 대한 느낌도 바꾸어 놓는다. 첫인상처럼. 춘천은 2년 연속 최우수 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묵은 동네에 그런 사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회 프로그램의 하나로 문화도시 사업을 하고 있는 현장을 방문했다.
춘천은 '모두의 살롱'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마다 방치된 빈집을 고쳐서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사용한단다. 살롱에 들어서며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 운영자가 살롱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지만, 그 공간 프로그램의 하나인 '사노라면'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