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산, 사흘 울다.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태어날 때 구미산이 기이한 소리로 사흘 동안 진동하며 울었다고 전해진다. 구미산이 사흘 동안 흔들리면서 울음 소리를 냈다는 것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나, 수운 선생이 태어난 것은 큰 성인의 탄신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갑오년 동학혁명에서 일본군에게 엄청난 학살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적 해석도 가능하다.
박홍규
수운 선생이 태어날 때 새벽하늘이 깨끗하게 맑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집을 휘감으며 둘렀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꽃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고, 구미산 봉우리는 기이한 소리로 사흘 동안 진동하며 울었다고 한다. 이내 동녘 하늘이 환하게 밝아오면서 온 누리를 비추기 시작하자, 동네 안에 아기 울음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63세의 근암공은 아들이라는 소식에 무척 반가워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근암공이 어린 아기를 지긋이 바라보는데 공자지도만물화생(孔子之道萬物化生)이란 글귀가 떠올랐다. 즉 '공자의 도(道)로 만물을 교화한다'라는 말씀을 '수운의 도(道)로 만물을 교화한다'라는 말씀에 빗대어 보면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산아 산아 구미산아 수운 탯줄 품은 산아, 만고풍상 세월 속에 너의 모습 변함없네. 아기 수운 탄생한 날 산기슭 작은집은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방안에는 꽃향기 가득, 이 세상 길을 밝힐 수운 아기 울음소리, 산과 들이 화답하는 우렁찬 진동 소리, 하늘의 오색구름 내려와 감싸니 수운 아기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나네. 산아 산아 구미산아 수운 탯줄 품은 산아 만고풍상 세월 속에 그날을 새겨다오. 그렇게 한 성인이 오시었네. 그렇게 우리 곁에 오시었네. 새 세상 새날을 열어줄 아기, 이 세상에 오시었네.
근암공과 한씨 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내아이 복술(福述)이는 잘생기고 영리했다. 얼굴은 구슬 같이 맑았고, 온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영롱하였다. 이때 설화가 한 구절 전해진다. 수운 선생이 태어난 날, 삿갓을 깊숙이 내려쓰고 걷던 노승 한 분이 집 앞을 지나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노승은 하늘과 땅을 번갈아 응시하고는 산천이 울리는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크게 한 번 웃고 또 한숨을 깊게 두 번 내쉬었다. 앞의 큰 웃음은 인류 역사에 다시 없는 큰 성인(聖人)의 출세를 뜻함이요, 다음의 깊은 한숨은 성인의 거룩한 순도와 그로 인해 수만의 처참한 죽음을 예견하는 것이었으리라.
복술 아기는 아버지 근암공의 사랑과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또한, 어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핌과 아들에 대한 사랑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라면서 기골이 반듯하고 용모도 수려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며 놀이를 할 때는 언제나 대장 노릇을 했다.
수운 선생은 「몽중노소문답가」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얼굴은 관옥(冠玉)이요 풍채는 두목지(杜牧之)라." 특히 눈동자에 광채가 번뜩여서 동네 아이들이, 최제우에게, "너는 역적이 될 눈이야"라고 하자,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나는 역적이 될 것이니, 너희는 착한 백성이 되어라"고 하였다 한다.
훗날 수운 선생의 수양녀 주씨(朱氏)는 "눈이 무서워 바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의 상고사가 "수운 최제우 선생에 의해 동학으로 드러났다"고 말한 김정설도 비범한 수운 선생의 모습에 대한 자기 할아버지의 말이라며 "호랑이 눈의 광채를 뿜었다"는 증언을 남겼다.
수운 선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비범하였다. 아버지 근암공의 학문을 모조리 전수 받았다. 근암공은 퇴계 학맥을 이은 뛰어난 학자였다. 수운 선생은 아버지 근암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이름이 경상도 일대를 뒤덮었다. 이곳 사람치고 우리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영남의 큰 학자였던 근암공은 "여덟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공부시켜 보면 재간이 있는지 없는지 성공할지 못할지를 알게 된다"며 열다섯 전에는 마소를 먹이거나 물 대기조차 못하게 하면서 만득자인 수운 선생을 가르쳤다.
복술 소년은 부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도 영특해서 동네 사람들은 신동이라 불렀다. 어느 날 어린 수운은 어머니에게, "아버지께서는 의관을 벗으시고 안방과 사랑방을 마음껏 다니시는데 어머니는 왜 문 밖을 자주 다니시지 못하고 안방에 주로 계십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최제우는, '남자는 높고 귀하며, 여자는 낮고 천하다'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모순에 강한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또 언젠가는 아버지 근암공에게,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면 먼저 절을 하는데, 아버지는 어째서 먼저 절을 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문 밖에서 "이리 오너라!"하고 하인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대감이 찾아왔다. 이때 아버지가 급한 발걸음으로 나가 그를 방안으로 정중하게 절을 하며 영접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수운 선생은, '우리 아버지도 어떤 사람에게는 절을 하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평등하지 못한 인간 세상을 어린 나이에도 예리하게 관찰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반드시 여쭈어 바른 대답을 원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였다.
어린 나이의 수운, 신동이라 불릴 만큼 영특하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남녀차별과 불평등한 세상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이치와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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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은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장」,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공동의장,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 또 현(現)천도교선도사·직접도훈, 전(前)전주녹색연합 공동대표, 전(前)전주민예총 고문, 전(前)세계종교평화협의회 이사 등 종교·환경단체에서 임원을 엮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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