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한국광복군 환송기념사진. 첫번째 줄 김구를 중심으로 이시영, 차리석, 박찬익, 조완구 지사가 자리해 있다. 맨 뒷줄에 조성환, 조소앙, 지청천, 이범석, 양우조 지사가 서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추모식에서 국민대학 교수 조동걸의 <단주 유림 선생을 생각한다>의 추모사 뒷 부문이다.
단주 선생, 그러나 8.15 후에 얼마나 실망하셨습니까. 불의라면 부자천륜 사이에도 용납하지 않던 선생께서 복국 이념의 실현은 고사하고 조국분단의 비극 앞에서 얼마나 낙담하셨습니까.
선생께서는 비상국민회의 부의장 등을 통하여 민족통일의 일념을 성취해보려고 혼신의 힘을 쏟았으나 미·소의 패권주의와 그에 편승한 극좌 극우 세력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선생의 실패는 곧 우리 민족사의 실패의 장으로 남아 아직도 종장의 매듭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선생은 아나키즘의 길이라도 지킬려고 독립노농당을 결성하고 외로운 불빛을 피우고 지켰습니다. 정녕 선생은 외로운 영웅이었습니다.
1953년 대구북성로의 독립노농당에서 선생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고독하더라도 의로운 열정이 가슴에 머물러 있다면 괴롭지는 않다고……. 그렇습니다. 지금도 고독하게 자리한 선생의 묘역에는 의로운 함성이 가득 차 있어 결코 외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의롭고 역사에 유유히 흐를 장엄한 고독이 여기 모인 모두의 귀에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함성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난 날의 환각에서 깨어나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선생이 계시던 30년 전 보다 더, 없는 자 보다 있는 자가, 못 배운 자보다 배운 자가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대학의 교수가, 정치인이, 언론인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통일도 바로 그들 때문에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을 비롯한 영령들의 유지가 빛나고 오늘을 반성하는 후생들이 있으므로 역사의 수레는 정의 인도의 길을 찾을 것입니다. (주석 1)
추모식에서 낭송한 추모위원 황빈(黃貧)의 추모시다.
혁명아는 하늘이 내는
섭리이거니
십칠세 혈서넉자
충군애국
약관에 형극의 길 면류관
으로 여기고
중원의 넓은땅을 한조각
구름되어
간곳마다 자유 평등 평화
의로움은 조국과 민족
눈물로 달래고
황하건너 만리길
한발 한발 중경 가는길
한민족 한정부 한이념
구호로 삼아…
임정헌법 기초위에
민주공화 새겼어라
왜적은 썰물되어 밀려가고
풍상의 인고 백발로 남겼어라
조국 땅내음에 구슬같은
눈물 옷자락 수놓고
조국은 두 조각
통한과 분노 독노당에
맡겼어라
해마다 이곳을 찾건만
선생의 모습 아지랑이
되고
오늘 설흔번
강산도 눈비함께 세 번
변하고
태양같은 선생의 뜻
우리들 가슴속 흑진주
여라
동방의 횃불 기름이 되고
온 누리 살림의 길 밝히오리다. (주석 2)
평전을 마무리 하면서 아나키즘 이론가의 한마디를 소개한다.
아나키스트는 대게 불가능한 역사의 근원처럼 항상 타인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들은 씨앗을 뿌리되 수확을 거두어들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꿈꾸는 자유·투쟁으로 얻으려는 자유는 영원히 인간의 상상 속에 맴돌 것이다. (주석 3)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주석
1> <단주 유림자료집>, 245쪽.
2> 앞의 책, 247~248쪽.
3> 장 프레포지에, 앞의 책, 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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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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