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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포기하자 "할머니 잠깐만요"... 그 우동 맛을 잊을 수 없다

94살에 처음 만난 '주문 기계', 창피해 식당 빠져나온 나를 붙잡아준 종업원... 얼마나 감사한가

등록 2024.06.07 11:02수정 2024.06.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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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푸드코트의 키오스크 모습 ⓒ 연합뉴스

 
거의 4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서울 나들이를 못 했다. 그나마 전화 말벗이었던 몇 남지 않은 친구는 건강이 악화돼 요양병원으로, 혹은 요양원으로 가버려 이제는 친구도 없다.

며칠 전 용기를 내어 좌석버스를 타고 서울 동대문으로 향했다.


종로2가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려고 가는 도중 시장 끼가 들어 둘러보니 '○○○우동'이라는 낯익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손님들은 거의 젊은층이었다. 나 같은 늙은이(필자 나이는 올해 94살이다)는 한 사람도 없었다.

완전 백발을 묶고 청바지에 반코트를 걸친 작은 할매의 꼴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 다들 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다. 자격지심이었을까? 그래도 나는 당당하게 빈자리를 찾아 앉아 종업원이 물컵을 들고 주문을 받으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감감무소식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두리번거리니 옆자리에서 우동을 먹고 있던 청년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할머니, 저~기 가서 주문하세요."
     
가리키는 쪽을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키오스크'였다. 앗차, 말로만 듣던 주문 기계였다.


나는 살며시 일어나 식당을 빠져나왔다. 안 해 봤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창피해서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누가 부르는 것 같았다.

"할머니, 할머니 잠깐만요."


뒤돌아보니 어떤 젊은 여성이 좇아왔다.

"왜 그냥 가세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 점심 드시고 가세요."

유니폼을 입은 것을 보니, 그 식당 종업원인 것 같았다. 나는 그날 그 우동 맛을 잊을 수 없었다.

문명이 발달해 모든 것이 기계화돼 생활이 편리해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전쟁으로 살아온 우리 세대는 때로는 버겁게 느껴진다.

은행도 차츰 수가 준다고 하고, 밖에서 밥을 사 먹기 힘들다. 아이들 집에 가도 입구부터 들어갈 수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 그래도 어렵게나마 복지제도가 뒷받침해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하다.

한수남(경기 용인시 원삼면 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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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남(처인구 원삼면 맹리) ⓒ 용인시민신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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