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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출발하지 마세요"

6개월 기다린 검사가 다시 밀린 날... 인요한 최고위원과 내가 받은 문자메시지

등록 2024.09.06 11:48수정 2024.09.0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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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은 아이의 조직검사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희소혈관질환을 갖고 태어난 내 아이에게, 이 조직검사는 현재 국제 임상2상 시험 중인 약물을 써볼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첫 관문이다.


유난히 자주 아팠던 2022년, 유난히 키와 몸무게가 자라지 않아 속을 태웠던 2023년을 거쳐 우리는 그동안 고민 고민하며 미뤄왔던 약물치료를 해보고 싶어 지난 2월, 조직검사를 위한 상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이의 조직검사 일정은 4월에서 5월로, 다시 9월로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다.

[관련기사 : 희귀병 우리 아이, 의료파업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https://omn.kr/28iyx]

4월, 5월에 잡혔던 일정은 예약일을 보름 남겨두고 병원에서 전화가 와 미뤄졌는데, 9월 일정은 전날까지도 연락이 없기에 이번엔 정말 검사를 하게 되나 보다 했다. 그런데 결국 입원일 당일 아침,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입원 병상이 없어 입원이 불가능할 수 있으니 출발하지 말고 대기하라고.

a  입원 당일 아침에 날아온 문자메시지

입원 당일 아침에 날아온 문자메시지 ⓒ 서이슬


이 문자를 확인한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입원 수속 시간인 오후 1시에 맞춰 병원에 도착하려면 집을 나서야 하는 시점이었다. 짐을 싸고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 미처 문자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관문을 나서려는 시점에 문자를 발견하고는 화가 치솟았다. 당일 오전에 이런 문자를 보낸다고? 전화도 아니고 문자로 이렇게?


의료현장 모르는 '윗선'의 사태 해결 방식

솔직히 말하면, 9월 일정은 연기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가 심화되면서 환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몇몇 환자단체들에 대해 '일대일 전담관'을 지정해 환자 피해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단체에도 전담관이 지정되었다.


해당 전담관은 복지부 고위 공무원으로, 바쁜 와중에도 나를 만나 희소질환자가 겪는 불편과 불안을 잘 들어주었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가 평소 하는 업무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일인 데다, 의사 인력 이탈로 인한 병원 현장의 상황을 그가 정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당연한 결과였다.

5월로 연기되었던 검사일정이 다시 9월로 밀리게 된 6월 초, 결국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희소질환 환자단체의 대표로서 기자회견, 국회의원 간담회, 국회 복지위 간담회, 환자단체 집회, 언론 인터뷰에 연속해서 서면서 우리 같은 희소질환자들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방송사,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6월 마지막 주 어느 날 저녁, 급기야 우리 단체 일대일 전담관으로 지정된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을 해왔다. "곧 S병원에서 연락이 갈 거"라는 소식이었다. 우리 아이 조직 검사가 연기되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는 지시가 '윗선'에서 있었고, 그 지시를 직통으로 받은 곳이 S병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정말로 그 S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S병원 관계자의 말투는 친절했지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병원에는 우리 쪽 환자를 보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S병원 관계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와 나의 통화는 채 3분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 환자단체 회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회원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A병원의 우리 전담 교수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여러 경로로 상황을 파악해보니, '윗선'에서 S병원으로, S병원에서 A병원으로 상황이 전달되면서 우리 전담 교수가 압박을 받고 있는 듯했다.

그날 오후, A병원의 우리 전담 교수와 전화연결이 되었다. 그는 평소 우리 회원들 사이에서 '정말 좋은 의사선생님'으로 인정받는 의사다. 그런 만큼, 그와의 통화 역시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서로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시작되었다.

그날 그는 내게 당부했다. "전공의 부재로 검사 진행이 어려워서 부득이 일정이 연기된 것인데, 며칠 전부터 다른 진료과 교수님들께 부탁해서 검사를 진행하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기다려달라는 건, 언론이나 국회 간담회 등에 더는 나가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 뒤로 지금까지 조용히 검사 일정을 기다려왔다. 일반 양육자가 아닌, 희소질환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더욱 조심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아챘다.

희소질환의 경우 해당 질환을 잘 알고 케어해주는 의사가 국내에 몇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환자 또는 환자단체와 의사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외부로부터 압박을 받으면 아무리 인품 좋은 의사라도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올 것이고, 그러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오게 되어 있다는 걸, 지시를 내리는 자들은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엔 정말 들어가나보다 했는데 당일 아침에 '입원실이 없다'는 연락을 받으니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전공의 부재로 인한 문제는 담당 교수의 노력으로 타과 교수들과 협진하는 걸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제 입원실이 없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병원에서는 '퇴원 예정 환자 수가 예상보다 적다'고 했는데,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예의 그 '복지부 전담관'에게 정확한 이유를 알아봐주십사 부탁했다. 몇 시간 후, 전담관으로부터 답이 왔다.

"병원에 확인했는데 요즘 중증소아환자분들이 전원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한번 들어오면 계속 계시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상급종합병원에 들어온 중증소아환자가 옮겨갈 병원이 마땅치 않은 건, 당연하게도 의사인력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때문이다. 답변을 내놓은 병원 직원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환자들이 한번 들어오면 계속 계시려는 경향이 있다"는 답은 마치 입원실이 없는 이유를 환자 탓으로 돌리려는 것으로 들려 몹시 불쾌했다.

그 큰 병원에서 당일 퇴원가능 환자 수 추산을 제대로 못해 입원 예정인 사람에게 당일 아침에 문자를 보내는 것이 문제지, 불안한 중증소아환자 양육자들이 병원에 더 머물고 싶어하는 것은 문제도 잘못도 아니다.

내가 받은 문자, 그가 받은 문자

a  국민의힘 인요한 최고위원(의료개혁특위 위원장)이 5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다. 2024.9.5

국민의힘 인요한 최고위원(의료개혁특위 위원장)이 5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다. 2024.9.5 ⓒ 연합뉴스


결국 아이의 입원은 다시 일주일 연기되었다. 입원 일정을 다시 잡아준 직원은 일주일 뒤에도 똑같은 상황이 생길 수 있지만 '최대한 입원 가능하시도록 자리를 알아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허망하고 화나는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하루를 보내고 아이가 먹을 저녁밥을 차리는 와중에, 언론에 보도된 기사 한 꼭지를 보았다. 의사 출신 집권여당 국회의원의 휴대전화 메시지 사진이었다. 그의 전 직장인 병원, 그가 지인의 수술을 부탁한 그 병원은 6월 어느 날 '윗선'의 지시를 받아 내게 전화했던 바로 그 병원이기도 하다. 물론 내 아이를 담당하는 과와 수술을 부탁한 과는 다른 과였을 거다.

그러나 누군가의 수술을 부탁한 국회의원과, 그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 의사 사이에 오고 간 친밀한 문자메시지를 보며,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당신들은 그렇게 언제나 당신들만의 세상에 살지. 고칠 수 없는 병을 안고 태어난, 무겁고 아픈 한쪽 다리로 평생을 힘겹게 지탱하며 살아갈 내 아이는, 그런 당신들의 세상에서 안중에도 없는 존재겠지.

남다른 몸을 갖고서도 세상을 잘 살아나갈 수 있게 해주리라 다짐하며 한자 한자 써내려간 글을 모아 낸 책에서 던졌던 질문, "아이는 누가 길러요?"라는 질문에 누구도 제대로 답하지 않는 이런 나라에서, 나의 세상 소중하고 애틋한 아이가 살아가고 있다. 이 아이에게 차마 해줄 말이 없는 나는, 그저 소리 없이 내 가슴만 쳐댈 뿐이다.
#희소질환 #의료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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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활동가로 살고 싶은 사람. 아이의 선천성 희소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T 증후군)'을 계기로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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