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발효식품 사랑도 '웰빙'

김치와 된장·고추장을 기피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등록 2004.08.06 18:17수정 2007.06.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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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자주 보리밥집을 찾는다. 보리밥에 나물과 푸성귀, 그리고 끓인 된장과 고추장을 비벼 맛있게 먹는다. 어린 시절 지겹도록 먹어야 했던 꽁보리밥이지만 지금은 과거를 회상하며 별식으로 먹는다. 50·60년대에는 '이밥에 고깃국으로 배불리 먹는 것'이 가난한 농민들의 소망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보를 벗어 마루에 던져 놓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살강 구석에 달려 있는 대소쿠리에서 쌀이 보일 듯 말 듯한 거무틱틱한 보리밥을 사기 밥그릇에 소복히 담아 들고 마당으로 나와 펌프로 퍼올린 물을 부으면 시원한 물말이 보리밥이 된다. 뒤뜰에서 싱싱한 오이를 따서 시원한 물에 씻어 고추장에 찍어 보리밥과 함께 먹었다.

비록 입 안에서 미끌미끌 잘 씹히지 않고 미끄러지는 보리밥이지만, 고추장에 오이를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하고 상큼한 맛에 대충 씹어 뚝딱, 보리밥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때우고 나면 힘이 불끈 솟았다. 방귀가 자주 나와 민망스럽기도 했다.

도회지에서 자란 사람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요즘 유행하는 '웰빙'이나 낭만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다. 필자는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라면서 김치에 된장·고추장으로 식사를 해와 지금도 밖에서 식사를 할 때는 주로 가정식 백반을 먹는다. 그러나 서울에서 자란 자식들과 아내는 육식에 피자와 햄버거 등을 즐겨 대조적이다.

몇 년 전 어느 대학에서 고추장과 마요네즈에 대한 한국인의 입맛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10대는 고추장 안 섞은 순수 마요네즈를 가장 좋아하고 20대는 마요네즈에 고추장이 20% 정도 섞인 것을 좋아했다. 30대는 고추장이 40% 정도 섞인 것, 40대는 60% 정도 섞인 것을 좋아했다. 50대는 고추장이 80% 정도 섞여야 좋아하고 60대는 마요네즈를 전혀 섞지 않은 100% 순수 고추장이 제일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10년마다 20%씩 고추장 맛을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50대에 가까운 사람들은 미국 잉여농산물처리법 408호의 혜택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밀가루 음식에 익숙한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빵을 먹고 자라 밀가루 음식에 익숙해져 김치·고추장·된장 등에 입맛이 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녀들에게도 제대로 찾아 먹이지 않다보니 이후 세대는 점점 더 전통 발효식품과 멀어지게 되었다.

둘째, 주부들이 젊은 시절 우리 고유 식품을 만드는 방법을 익히지 못해 친정이나 지인들로부터 얻어 먹다 보니 발효식품과 멀어지고 자녀들도 어린시절부터 피자·햄버거·치킨· 탄산음료 등 양식과 가까이 하다보니 우리 전통 발효식품 맛을 익히지 못했다.

셋째,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조리 시간이 부족해 손수 만들어 먹기 보다 어지간한 반찬은 대부분 사다 먹는 경우가 많다. 손이 많이 가는 발효식품 및 그와 관련된 음식보다는 간편하고 손쉬운 것을 택한다는 말이다.


한때 우리의 김치·고추장·된장은 그 냄새로 인해 배척의 대상이 되고 미개인의 음식처럼 대접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적 우수성까지 밝혀지면서 여러 나라에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김치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푸대접을 받고 있지만 일본은 자기들 식품인 양 전 세계를 상대로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량을 늘려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식품이라고 칭찬받는 우리 고유식품 된장·고추장·김치를 보존·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아야 할 때다. 웰빙시대에 요구되는 식품은 인체에 부작용이 없는 완전 식품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이다. 우리 것을 사랑하는 것도 신토불이(身土不二)를 떠나 웰빙이다. 각급 학교는 학생들의 급식에 이같은 점을 고려, 식단에 반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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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BT 전문기자<약력> 충북 청원생, 신아일보 80년 해직기자, 전자신문 정보산업부 차장, 한국정보통신기자협회 초대회장, 국민일보 과학/경제/사회부장, (주)월컴프레스 대표이사/사장(발행인), 식품일보 편집국장 겸 논설위원, 정보통신신문 부사장겸 논설주간, 민주화운동가, 신아일보 편집국장 겸 논설실장, 단재사관구연구소장,IT&BT컨설던트 <저서> 정보와 통신, 컴퓨터현장25시, 컴퓨터산업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컴퓨터상품학, 21세기 정보사냥, 실리콘밸리파워, 황소같이 일만하면 망한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바람 든 한국사회, IT전문가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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