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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알지 못했다. 아흔셋 치매할머니와 엄마의 전쟁에서 가장 힘겨워했던 또 한사람이 있었다는 걸.
평생 개성상인으로 살아온 아버지는 칠순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개성상회의 대표상인으로 온갖 야채를 팔아왔다.
오늘도 할머니는 서너 번을 자고 일어나 아침 치레를 했다. 두 시간 들이로 새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들어가 물질을 했던 할머니는 아버지가 개성상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들 무렵이면 하루 일 치레를 종료하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저녁 8시 반 무렵. 식탁에 막 둘러앉아 국그릇에 수저를 담근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엄마의 일방적 고성이 울렸다.
"아니, 오늘은 왜 더하세요. 아범 들어와 이제 막 밥 좀 먹으려는데…. 언제 또 나오셔서 옷을 다 벗으셨어요."
보기에도 민망하게 할머니는 벌거벗고 집안을 돌아보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몇 시간 전에 갈아입은 옷을 또다시 벗어 세수대야에 담가 논 채, 이제 막 수저를 든 아버지를 향해 "누구쇼"라니….
틀어 논 수도꼭지를 잠그며 엄마의 목소리가 또다시 담을 넘었다.
낮에는 물린 밥상 들고 나오는 엄마를 향해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를 연발했던 할머니. 늦은 오후 다 빨아 햇볕에 말린 옷가지를 가지런히 밀어 넣자 "아줌마, 고마워. 다른 집에서는 빨래는 안 해 준대"라며 살며시 미안해하기도 했건만….
김칫국에 수저를 담근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와 치매할머니 간의 1년여 전쟁 속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말없이 엄마 만큼, 아니 엄마보다 더 폐허같은 가슴을 쓸어 내리시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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