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집 아들'이라 행복하다

상상 속에나 있었던 내 이름을 건 중국집이 실제 생겼다

등록 2006.12.08 11:34수정 2006.12.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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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버지의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짬뽕.

아버지의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짬뽕. ⓒ 이덕원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슈퍼마켓 아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 슈퍼마켓 아들은 어머니에게 조르지 않아도 맛있는 과자, 아이스크림을 매일 실컷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고교시절부터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부모님이 작은 '중국집'을 차리신 것이다. 사실 사업을 실패하신 아버지가 중국집 배달부터 다시 시작해 주방보조, 주방장을 거쳐 7년 만에 어렵게 이룬 쾌거였다. 실제로 맛있는 자장면, 탕수육을 쉬이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고교 땐 반에서 인기 '짱', 비결은 바로...

@BRI@어릴 적 내가 맛있는 과자, 아이스크림 때문에 슈퍼마켓 아들을 부러워했듯, 친구들은 맛있는 자장면, 탕수육 때문에 '중국집 아들'인 나를 부러워했다.

당연히 '너는 자장면 짬뽕 탕수육을 맨날 먹을 수 있냐', '자장면 짬뽕 탕수육도 맨날 먹으면 질리지 않냐', '차림표에 있는 중국요리들 다 먹어봤냐', '중국요리 중에 뭐가 제일 맛있냐' 등 친구들의 질문도 끊임없이 들었다.

나는 주말이면 종종 그렇게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가게로 데리고 가 자장면, 짬뽕은 물론이거니와 탕수육이나 팔보채까지 함께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먹은 친구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와 같은 반 다른 친구들을 북돋았다.

"너네 난자완스라는 거 먹어봤냐? 내가 덕원이네 가게 가서 먹었는데 진짜 맛있어! 글쎄, 탕수육은 비교도 안 된다니까."


아마 안 나가서 그렇지, 당시 학급선거에 나갔다면 반장도 '떼 놓은 당상'이었으리라.

내가 지은 가게 이름 '하이루~'

a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한예슬 분)'은 자장면을 좋아한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한예슬 분)'은 자장면을 좋아한다. ⓒ MBC

부모님은 시골에 위치한 'OO반점(지명을 딴 상호인지라 밝히지 않음)'이라는 중국집을 작년까지 운영하시다 처분하셔야 했다. 아버지는 당뇨, 어머니는 고혈압으로 병원을 드나드셔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일 년여 동안 부모님은 병원을 다니시며 건강을 회복하셨고, 지난 10월에는 가족들의 힘을 모아 시내에 다시 중국집을 차릴 수 있었다. 어머니가 가게 터, 아버지가 직원, 내가 가게 상호를 정하기로 맡은 것이었다.

당시 내가 상호를 지으면서 약속한 것은 '이번엔 식상하지 않은 상호를 정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는 어려운 한자의 조합을 놓고 고민하셨고,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쉽게 지으시라고 농담 삼아 예를 들었던 것이 통신언어 '하이루'였다.

아버지는 뜻밖에도 쉽고 뜻도 좋다며 가게 상호를 하이루로 결정하셨다.

'하이루'에 전화를 하면 이렇게 받는다. "하이룹니다~"

"내가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니까!"

a 아버지는 "대머리라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갈 일은 없다"고 자랑하신다.

아버지는 "대머리라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갈 일은 없다"고 자랑하신다. ⓒ 이덕원

그렇게 하이루의 문을 열고 자리를 잡아갈 무렵,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아버지의 제안에 올 초부터 중국집을 시작하셨던 이모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도저히 운영을 못하시겠다는 것. 아버지는 책임감에 어쩔 수 없이 이모부가 운영하시던 중국집도 맡게 되셨다.

나는 부모님 기력이 예전만 못하셔 중국집 하나도 힘에 부쳐하시는데, 가게를 하나 더 맡으신다니 건강이 다시 나빠지시진 않을까 덜컥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11월 초 어느 날 저녁, 약주를 드셨다고 운전기사 노릇을 하러 오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새로 맡게 될 중국집으로 갔다.

"너 들어오면서 아무 것도 못 봤어?"
"보긴 뭘?"
"'간판' 말이야, 바꿨잖아."
"그래? 보고 올게."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는 대뜸 가게 간판을 못 보고 들어왔느냐고 물으셨다. 운영을 맡기에 앞서 가게 상호 변경을 고민하시더니 무엇으로 정하셨나 궁금한 마음에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간판에 적힌 상호는 너무 '익숙'했다. '덕원루', 가게 상호는 다름 아닌 내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더니 조금 지나자 괜스레 쑥스러워 다시 웃음이 나왔다.

내게 덕원루가 익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모님이 처음 중국집을 시작하시고 가게 상호를 정할 때마다 거론됐던 '덕원반점', '덕원각', '덕원루'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게로 들어가 부모님에게 말했다. "내가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니까!"

"덕원루엔 덕원이가 있어야지!"

a '상상 속에나 있었던' 덕원루가 실제로 생겼다.

'상상 속에나 있었던' 덕원루가 실제로 생겼다. ⓒ 이덕원

나는 '중국집 아들'이라 행복하다. 자장면 짬뽕을 비롯해 탕수육 같은 중국요리도 언제나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상상 속에나 있었던' 내 이름을 건 중국집도 '실제로' 생겼다.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한예슬 분)'이 안다면 참말로 부러워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덕원루가 하이루에 비해 매출이 낮다는 점이다. 하이루에서 일하시는 형은 그 이유를 "덕원루에 덕원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농담 섞어 말하셨다.

붕어빵이라고 붕어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붕어 모양은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마찬기지로 내 이름을 건 가게인 만큼 사명감이 뒤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조만간 '덕원루'의 전단지를 들고 직접 나서야겠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2006, 나만의 특종' 응모기사입니다.

* '하이루'와 '덕원루'는 지방에 있습니다. 특히 '하이루'의 경우 다른 지역에도 동일한 상호의 중국집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홍보활동으로 오해하실까 말씀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06, 나만의 특종' 응모기사입니다.

* '하이루'와 '덕원루'는 지방에 있습니다. 특히 '하이루'의 경우 다른 지역에도 동일한 상호의 중국집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홍보활동으로 오해하실까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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