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보수, 헌신성 없고 현실에 안주"

[보수 대해부 1부 - 인맥지도] ③ 지식인 그룹 -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등록 2006.12.15 12:27수정 2006.12.1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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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한민국은 바람의 나라야. '풍'의 나라. 아주 변화가 빨라. 변화가 빠른 건 장점인데… 그때그때 뭘 좀 배우면서 갔으면 좋겠어요. 이 바람의 나라가 말이에요, 내실이 허한 게 걱정이에요. 그래서 지도자 역할이 중요한데, 바람타고 개인만 생각하면 이게 포퓰리즘이 된다고."

대한민국 선진화 담론을 주창해온 지식인 그룹의 좌장격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또 다시 '바람'을 걱정했다.

4년 전, 뜻밖의 '노풍'을 만나 '잃어버린 10년'을 성토해야 했던 보수는 당시의 분루를 삼키고 '뉴라이트'로 신장개업했다. 다시는 진보좌파에게 정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조직적 채비도 강화했다. 박 이사장은 선진화 담론의 전도사가 될 정도로 이론무장도 끝냈다. 그러나 여전히 '바람'은 신경 쓰이는 듯했다.

박세일 한선재단 이사장은 누구?

박세일(58)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현직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이다.

17대 국회에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진입했으나 지난해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재임 중 행정도시특별법의 국회 처리에 반대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95년 김영삼 정부 시절에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 비서관과 사회복지수석 비서관을 역임했다.

89년 경실련 창립멤버이기도 한 박 이사장은 시민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결합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20세기적 좌우대립을 넘어 선진화로 가자며, 21세기 국가발전이념으로 공동체자유주의를 주창한다.

최근 한 월간지를 통해 한나라당이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범우파의 구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노당, 민주당, 국민중심당 모두 대한민국 선진화 정당으로 비전을 가졌다고 보기에는 심히 부족하다"고 책망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법경제학>과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이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구반포 개인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박 이사장은 "뉴라이트는 보수의 자기혁신운동"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미래지향적으로 간다는 게 뉴라이트의 핵심"이라고 못 박았다. 뉴라이트가 얼마나 보수의 자기혁신에 충실하는지 그걸 지켜보라고 주문했다. 매우 자신감 있는 어조였다.

그는 민주화 단계에서 보수세력의 참여와 자기 확신이 부족했고 헌신성이 없었으며, '현실 안주병'에 걸려 있었다고 반성했다.

최근 라틴아메리카 정세와 관련해서 박 이사장은 "민주화에는 성공했지만 자유화에 실패한 경우"라며 "새로운 좌파독재를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것이 라틴아메리카 정치의 비극"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줄곧 '뉴라이트'와 '뉴레프트'의 건강한 토론을 강조한 박 이사장은 최근 연구단체 차원에서 새로 생긴 뉴레프트 단체로 ▲희망제작소 ▲좋은정책포럼 ▲사회디자인센터 등을 꼽았다.

다음은 박세일 이사장과 나눈 인터뷰 전반부 전문이다.

민주화 이뤘지만, 자유화 실패한 경우 많아

- 최근 '선진화' 담론을 설파하고 있다. 선진화란 무엇인가.
"해방 이후 우리는 건국의 시대(40~50년대), 산업화 시기(60~70년대), 민주화 시기(80~90년대)를 거쳐 왔다. 그에 비해 21세기 국가비전과 목표는 실종된 상태다. 불명확하고 산만한 담론은 있지만 국가목표는 표류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선진화를 이루자는 게 내 생각이다.

경제 선진화는 국민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여는 것이다. 정치 선진화는 성공한 민주화를 밑거름으로 자유화 단계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나라가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자유화에 실패했다.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는 민주화에는 성공했지만, 자유화에 실패한 경우다. 이 지역은 비자유민주주의가 됐다가 다시 새로운 독재를 낳고 있으며, 그게 악순환 되고 있다."

-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어떤 나라가 자유화에 실패해 새로운 독재를 낳고 있다는 건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가 그렇다. 대중의 목소리가 커져 정부를 선택할 권한이 생길 때 정치계에 선동가가 등장할 위험이 있다. 이때 포퓰리즘이 된다. 포퓰리스트가 집단이기주의와 결합하면 국정운영에서 법치를 무시하는 방향, 헌법을 경시하는 경향으로 간다. 정치선동가가 포퓰리즘으로 전환하면 결국 사회는 무정부상태가 돼서 다시 좌파나 우파의 독재가 등장하게 된다."

- 브라질 룰라, 베네수엘라 차베스, 니카라과 오르테가 대통령 등이 좌파 독재자인가.
"그 정부들이 어디로 갈지 두고 봐야 하지만 권위주의를 끝내고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들이 국민지배 단계로 가면 대중성은 높지만 전문성은 약한 상황이 생긴다. 이때 이익집단과 정치적 선동가가 결합하면 사회는 민주화 단계를 넘어 자유화로 못 간다. 이것이 라틴아메리카 정치의 악순환이자 비극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대단히 어렵고, 잘 노력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와 우리는 교육수준, 역사적 배경,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가 자유화까지 성공하도록 힘을 합쳐 나가야 명실 공히 선진정치를 이룰 수 있다."

'반' 대한민국 세력은 정리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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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서 선진사회론에 대해 다퉈보자며 '반(反)대한민국세력' 규정은 남남갈등 조장논리라고 비판했다. 어떻게 보나.
"죄송하지만 아직 백낙청 교수의 글을 읽어보지 못했다. 해외 출장 때문이다. 그러나, 선배 교수님이 얘기하는 것은 경청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반(反)대한민국 세력은 빼고, 진보와 보수가 모여 미래를 논의하자고 한 것은 굉장히 상식적이고 아주 간단한 논리다.

대한민국 역사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전면 부정하거나, 헌법과 법치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정신과 가치를 부정하는 분들과 미래를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선진화 담론을 논할 때 대한민국 자체를 '재수 없는 나라'로 보는 분들과 함께 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유럽과 미국에도 좌파가 있지만 자기 역사와 헌법을 폄훼하는 사람들은 못 봤다."

-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누구인가.
"여러 분야에 많지 않나. 우선 '대한민국이 재수 없는 나라'라고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있다. 이건 곤란하다는 얘기다. 이 부분이 정리되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가 대단히 어려움을 겪는 자기모순에 빠질 거라고 본다. 이걸 강조하는 이유는, 보수쪽 입장에서는 진보쪽 일각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분(反대한민국세력)은 정리되는 게 맞다고 보는 것이다."

- 개혁적 보수와 수구적 보수, 합리적 진보와 급진적 진보를 구별하는데, 뭐가 다른가.
"한국의 보수세력은 대한민국 역사 가운데 건국과 산업화에서 역사적 주체였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역사를 만들었다. 다만, 민주화 단계에서 참여가 부족했다. 이게 잘못된 보수다. 올바른 보수의 기본가치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다. 이게 자기 원칙이라면 당연히 몸을 던져 민주화 투쟁을 했어야 했는데 못했다. 보수적 가치에 대한 자기 확신이 부족했고, 헌신성이 없었고, '현실안주병'에 걸려 있었다. 이걸 반성하는 것은 개혁적 보수고, 이걸 반성하지 않으면 잘못된 보수다."

"진보에 친북좌파 없다는 건 자기기만"

- 합리적 진보는 무엇인가.
"반면, 진보는 민주화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자유화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북한인권에 대해 말을 안 하고 있다. 진보의 최우선 가치인 인권을 말하지 않는 것 자체가 자기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 국가운영철학이 19세기적이다.

세계화, 정보화라는 큰 문명사적 전환을 받아들이면서 진보적 가치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결과가 가시화돼야 하는데 눈에 안 보인다. 정서적 진보는 있어도 정책적 진보는 없다. 이같은 양 진영의 문제를 극복하는 게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다. 이들이 등장하면 대화가 쉽게 진행되겠지만 지금은 안 된다. 각자 자기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은 건국과정과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서 서로 엇갈린다.
"역사의 성공과 실패는 상대적 개념이다. 역사에는 항상 명과 암이 있다. 모택동이 중국혁명의 지도자이지만 문화혁명 때 사람을 많이 죽여서 문제가 됐다. 모택동도 7할은 성공했지만 3할은 실패했다. 역사란 그 과정에서 뭘 배우고 뭘 고칠 건지, 발전적으로 계승하면 된다.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게 뭐가 중요한가. 또 건국과 산업화를 그렇게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굉장히, 대단히, 승리한 역사라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 선진화에서 '수구적 보수'와 '급진적 진보'는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굴 빼라는 건가.
"한나라당 안에도 올바른 보수와 수구적 보수가 있다. 또 열린우리당 안에도 급진적 진보와 합리적 진보 두 그룹이 있다. 한 집단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전교조, 민주노총에도 합리적 진보도 있고, 친북좌파도 있다.

어느 하나를 전부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행동과 말을 갖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친북좌파가) 없다고 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각자 가슴에 손을 얹고 보면 다 안다. 양 진영의 집단매도는 좋지 않다고 본다. 여러 계층을 잘 정리해 나가야지, 자꾸 꼬투리를 잡는 것은 정치투쟁이다. 애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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