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소녀취향'의 왕언니 <캔디캔디> 시리즈. 맨 오른쪽 책은 김숙씨가 그린 만화.지경사
명랑소녀의 '왕언니'는? 당연히 '캔디'다. 1977년 <캔디캔디>가 공중파 TV를 통해 방송되기 시작했다.
@BRI@ 지경사(대표 김병준)는 당시 어른이 읽어도 눈물나게 재밌었던 이 만화를 책으로 출판했다.
"출판 당시에 일본에 건너가 작가 이가라시 유미코를 만난 적이 있어요. '<빨간머리앤>과 <키다리 아저씨>을 섞었다'고 들었어요."
이후 지경사는 본격적으로 '명랑소설시리즈'를 출간한다. 김 대표는 남자아이들은 전자오락실이나 야외에서 놀거리가 많았지만 여자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일례로 실내에 많이 머무는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의 독서율은 남자 아이들의 두 배 이상이었다.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도서를 기획한 이유다.
소녀들의 책장 휩쓴 '말괄량이 쌍동이'·'플롯시' 시리즈
김 대표는 한국 소녀들은 유럽이나 미국의 아이들보다는 일본의 아이들과 취향이 비슷할 거라고 추측했고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80~90년대에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닌 여성이라면 잘 알고 있을 <말괄량이 쌍동이의 신학기>, <플롯시의 꿈꾸는 데이트> 등 소녀명랑소설 시리즈는 대부분 일본에서 들어온 경우다.
한국의 소녀들은 1989년부터 10여년 정도 소녀명랑소설 시리즈에 열광했다. 소녀명랑소설은 성공했다. 지경사에서만 모두 40여권이 나왔는데 5만부씩 약 200만부가 팔렸다.
현재 지경사의 미술부장으로 있는 이명선씨가 이 시리즈의 삽화를 담당했다.
"어렸을 때엔 저도 종이인형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만화를 많이 따라 그렸었죠. 당시 시리즈를 낼 때 일본판을 보기도 했던 것 같네요."
'소녀명랑소설' 시리즈의 대히트에는 삽화가 톡톡한 역할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뭐 한 게 있다고"라는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래도 당시에 인기가 있긴 했던 모양"이라며 "새로 들어오는 후배나 요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분도 당시 그 그림을 기억한다고 말하더라"고 조심스레 덧붙인다.
이씨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소설은 '플롯시 시리즈'. 그는 90년 중반 재출간 시도를 할 때 컬러로 제작한 삽화를 보여주며 "재출간이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지경사는 이 성공에 힘입어 이후 명랑 소설 시리즈에서 루이스 로우리(Lois lowry)의 <나의 비밀노트>를 출판했다. 루이스 로우리는 미국 도서관협회의 뉴베리메달을 네 번 수상하기도 한 유명한 작가였다.
한국작가를 통한 소녀소설이 실험되기도 했다. 최연씨가 쓴 <나의 마니또(지경사)>가 그 예였다. 그러나 또래의 관점에서 재기발랄하게 쓰여진 작품보다 눈높이를 달리하는 '교훈적인' 서술은 히트로 연결되지 못했다. 소녀 대상의 소설 시장이 적은 한국 문학계에서는 작가를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