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은 열광했지만 출판계선 가볍다 비판"

[인터뷰] '소녀소설'의 산실 지경사 김병준 사장· 이명선 미술부장

등록 2006.12.22 10:08수정 2007.04.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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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77a2">내가 바로 '소녀취향'의 왕언니 <캔디캔디> 시리즈. 맨 오른쪽 책은 김숙씨가 그린 만화.
내가 바로 '소녀취향'의 왕언니 <캔디캔디> 시리즈. 맨 오른쪽 책은 김숙씨가 그린 만화.지경사
명랑소녀의 '왕언니'는? 당연히 '캔디'다. 1977년 <캔디캔디>가 공중파 TV를 통해 방송되기 시작했다.

@BRI@ 지경사(대표 김병준)는 당시 어른이 읽어도 눈물나게 재밌었던 이 만화를 책으로 출판했다.


"출판 당시에 일본에 건너가 작가 이가라시 유미코를 만난 적이 있어요. '<빨간머리앤>과 <키다리 아저씨>을 섞었다'고 들었어요."

이후 지경사는 본격적으로 '명랑소설시리즈'를 출간한다. 김 대표는 남자아이들은 전자오락실이나 야외에서 놀거리가 많았지만 여자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일례로 실내에 많이 머무는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의 독서율은 남자 아이들의 두 배 이상이었다.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도서를 기획한 이유다.

소녀들의 책장 휩쓴 '말괄량이 쌍동이'·'플롯시' 시리즈

김 대표는 한국 소녀들은 유럽이나 미국의 아이들보다는 일본의 아이들과 취향이 비슷할 거라고 추측했고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80~90년대에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닌 여성이라면 잘 알고 있을 <말괄량이 쌍동이의 신학기>, <플롯시의 꿈꾸는 데이트> 등 소녀명랑소설 시리즈는 대부분 일본에서 들어온 경우다.

한국의 소녀들은 1989년부터 10여년 정도 소녀명랑소설 시리즈에 열광했다. 소녀명랑소설은 성공했다. 지경사에서만 모두 40여권이 나왔는데 5만부씩 약 200만부가 팔렸다.


현재 지경사의 미술부장으로 있는 이명선씨가 이 시리즈의 삽화를 담당했다.

"어렸을 때엔 저도 종이인형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만화를 많이 따라 그렸었죠. 당시 시리즈를 낼 때 일본판을 보기도 했던 것 같네요."

'소녀명랑소설' 시리즈의 대히트에는 삽화가 톡톡한 역할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뭐 한 게 있다고"라는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래도 당시에 인기가 있긴 했던 모양"이라며 "새로 들어오는 후배나 요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분도 당시 그 그림을 기억한다고 말하더라"고 조심스레 덧붙인다.

이씨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소설은 '플롯시 시리즈'. 그는 90년 중반 재출간 시도를 할 때 컬러로 제작한 삽화를 보여주며 "재출간이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지경사는 이 성공에 힘입어 이후 명랑 소설 시리즈에서 루이스 로우리(Lois lowry)의 <나의 비밀노트>를 출판했다. 루이스 로우리는 미국 도서관협회의 뉴베리메달을 네 번 수상하기도 한 유명한 작가였다.

한국작가를 통한 소녀소설이 실험되기도 했다. 최연씨가 쓴 <나의 마니또(지경사)>가 그 예였다. 그러나 또래의 관점에서 재기발랄하게 쓰여진 작품보다 눈높이를 달리하는 '교훈적인' 서술은 히트로 연결되지 못했다. 소녀 대상의 소설 시장이 적은 한국 문학계에서는 작가를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플롯시 시리즈'의 그림을 담당했던 이명선(왼쪽)씨. 오른쪽이 그가 그린 삽화들이다.
'플롯시 시리즈'의 그림을 담당했던 이명선(왼쪽)씨. 오른쪽이 그가 그린 삽화들이다.김홍주선
"너무 가볍다" 출판계의 비판... 재출간 시도 무산되기도

그런데 '소녀소설'이란 타이틀을 정면에 내건 시리즈 출판에 아이들은 열광했지만, 학부모와 문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부모들은 이런 책이 아닌 <논리야 놀자>를 읽으라고 권했고, 출판계에서는 지경사를 가벼운 책을 들여오는 출판사로 매도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책을 만들고 싶었던 김병준 대표는 책은 무겁고 진지해야한다는 문단의 보수주의와 20여년간 싸워야했다.

"국어학자 이오덕씨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표지가 알록달록하다', '왜 만화식의 삽화를 넣느냐'고 그러더라고요. 많이 싸웠죠."

'소녀'라는 것에도, '명랑'이라는 것에도 문단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영화나 TV 등의 영상 매체에서는 더욱 파격적인 실험을 시도하는데, 유독 책에는 엄숙한 진지성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 문단의 특징이었다.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것도 비판의 여지를 남겼다.

90년대 중반 소녀명랑소설 시리즈의 재출간 시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무산되고 말았다. 매체 발달로 인한 아이들의 변화된 눈높이도 재출간 의욕을 꺾었다.

"요즘 아이들을 웃기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아이들은 이미 많은 걸 알고 있어요. 현재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려면 더욱 파격적인 내용, 이를테면 동성애까지 다루어야 하는데, 그러면 심한 비난이 쏟아져요. 유독 책에 대해서만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이들 책에 대해서만요. 무서워서 못 냅니다. 요즘 아이들 책은 죄다 학습 위주입니다. 책의 재미를 모르는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보면 불행하지요."

김 대표의 한숨섞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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