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옛사랑의 그림자' 되지 않기를

[릴레이기고 21] 김상현 전 <시사저널> 기자

등록 2007.02.14 08:42수정 2007.07.0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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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파업에 들어간 <시사저널> 기자들이 직장폐쇄에 맞서 농성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 뒤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였고, 최근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연이어 나오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고 있다. 김상현 기자는 공채 2기로 <시사저널>에 입사해 일했으며, 지금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에너지자원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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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사측의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지난 1월 24일 오전부터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사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천막에 설치된 시사저널 표지 모음 현수막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시사저널>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이름뿐인 <시사저널>이야 얼마든지 그 명맥을 이어갈테지만 내가 알고 내가 사랑하는 그 <시사저널>은 아닐 터이다. 뇌사 상태에 빠진 그 <시사저널>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내가 보기에 지금 거리로 뛰쳐나온 기자들이다. 그들의 순정한 열정이다.

그들이 없는 <시사저널>은 다만 허명이고 껍데기일 뿐이다. 내 젊은 날 그토록 사랑했고 자랑스러워 했던 그 <시사저널>은 더이상 아니다.

젊은 날 내가 사랑했던 <시사저널>은

지금의 <시사저널> 사태는 지극히 단순하다. 김훈 선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편집권을 "자장면을 먹을 것인가 우동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리"라거나 소유가 가능한 "재산권"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수준 이하의 천민자본과,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권력의 부당한 간섭과 억압을 적절히 견제하고자 하는 참기자들 간의 싸움이다.

언론을 한갓 자기 선전의 도구나 정치적 발판 정도로 곡해하는 구악으로부터 참언론을 구해내려는 분투이다. <시사저널> 사태를 더더욱 돌이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몰아가는 이른바 '경영진'의 비틀어진 언론관을 보는 마음은 지극히 참담하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궤변과 거짓말은 딱할 만큼 옹색하고 누추하며 비루하다. 이 사태의 진원지인 금창태씨는, 만약 과거에 언론인이었다는 일말의 자부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 당장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과와 함께 용퇴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게 바로 사필귀정이요 결자해지이며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일이다.

거짓말과 궤변, 소도 웃을 '명예훼손' 줄소송은 도리어 본인의 명예-그런 것이 있다는 가정 아래-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자, 그간 쌓아온 본인의 사회적 지위를 자해공갈범 수준으로 자진해서 강등하는 그릇된 선택일 뿐이다.

첫눈에 반했다, 기자 이름도 외웠다

1989년, <시사저널> 창간호를 집으며 느꼈던 그 흥분과 기대를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군생활을 막 시작하던 그 무렵, 나는 <시사저널> 창간호를 인천 송도 근처의 한 가판대에서 사보았고, 이후 <시사저널>의 열혈 독자가 되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수요일, 잡지가 나올 때마다 한 호도 빠지지 않고 가판대에서 사보았다. 외출할 여건이 안될 때는 외박이나 휴가 나가는 병사에게 시사저널을 사오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매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뒷표지까지, 마치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3 학생처럼 나는 <시사저널>을 꼼꼼하게 빠짐없이 읽었다. 기자 이름까지 다 외웠다. 외우려 해서 외워진 게 아니라 기사에 끌리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얼굴조차 본 적 없는 그들이 마치 가까운 동료나 선배처럼 여겨졌다. 정기수·김당·남문희·이등세·김방희·이문재·문정우·서명숙·장영희·조용준·백승기·김봉규…. 마스트헤드(기자 등 직원 소개란)의 이름들을 꼬박꼬박 챙겨 읽는 일은 시사저널 읽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였다.

<시사저널> 공채 1기 기자 다섯 명의 이름을 보면서, 제대하면 나도 그 수습기자 공채에 응시하리라 마음먹은 것도 그 때였다.

1991년 가을, <시사저널> 공채 2기 모집에 응시했다.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그 정동길 보도 위로 날리던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리고 '아, <시사저널>에 합격해서 매일 이 길을 오르내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던 한숨 섞인 열망….

'너의 노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곽재구의 시 '은행나무'를 유난히 좋아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시사저널>에 대한 고민으로 술마시고 숨쉬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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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경영진이 지난 1월 22일 직장폐쇄 조치를 하겠다고 노조 집행부에 전격 통보했다. 편집국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시사저널 노동조합 사무실도 당분간 이용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리고 나는 <시사저널> 기자가 되었다. 공채 2기. 정말 운좋게도 <시사저널>의 식구가 되었다. 합격 전화를 받고 펄펄 뛰며 좋아하는 나를 보며 '얘가 뭘 잘못 먹었나?'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시면서도 함께 기뻐해 주시던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이후 1995년 8월까지 4년 4개월, 햇수로는 5년 동안 <시사저널>에서 일했다.

흔히 '안깡'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안병찬 편집국장으로부터 직접 수습기자 훈련을 받는 호사도 누렸고 (늘 호사스러웠던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D), 내 마음속의 우상이던 김훈 선배 밑에서 일하는 행운도 얻었다.

곁에서 접한 김훈 선배는 <한국일보> 문학 기사를 탐독하며 내 스스로 추정하고 만들어냈던 그 인물보다 훨씬 더 맑고 깊고 따뜻하고 넓은 사람이었다.

사실 <시사저널>의 모든 기자들이 그러했다. 기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보다 더 맑고 따뜻한 사람들. 술자리에서도 <시사저널>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 그 <시사저널> 기자들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열망으로 술마시고 숨쉬는, 참 고지식하고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시사저널>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다. 이후 여러 잡지와 신문, 기업을 전전했다. 따지고 보면 <시사저널>에서 지낸 시간보다 다른 직장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돌이킬 때마다 예외없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시사저널에서 일했던 기억이다. 다른 직장에서의 일은 의도적인 노력 뒤에나 겨우 희미한 몇 장면들로 추억될 뿐이다.

그에 견주어 <시사저널>에 대한 추억은 자동적이다. '한국' 하면 <시사저널>이다. <시사저널>에서 함께 지지고 볶았던, 울고 웃었던 동료, 선배들이다. 그들은 내게 첫사랑과도 같이, 언제나 기억 한 켠에 자리잡고 앉아서, 수시로 따뜻하고 아련한 느낌을 가슴에 안긴다.

마음에 드는 첫 문장 생각해내려 밤샘 하던 동료들

중뿔나게 진보를 부르짖은 것도 아니었다. 표나게 민주주의나 민중을 내세운 것도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정치적 당파성을 드러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시사저널>은, 어떻게 보면 뜨뜻미지근하고 어중간한, 뚜렷한 개성이 없는 잡지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사저널> 기자들은 또 독자들은 알고 있었다. <시사저널>만이 가진 힘을, 매력을.

그것은 순수함이었다. 잡지를 만드는 데 참여한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지극한 진정성이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너나없이 순정한 열정으로 기삿거리를 정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기사를 썼다.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을 찾지 못해 끙끙대며 밤샘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고민 끝에 원고를 끝내고 회사를 나설 때의 그 성취감, 그 소박한 기쁨은 밤샘의 피로조차 즐거운 추억으로 환치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지난 해 늦가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샌더스키라는 곳에서 옛 <시사저널> 식구 몇을 만났다. <시사저널>을 떠나 혹은 미국에서, 혹은 캐나다에서 제 나름의 새 삶을 꾸린 옛 동료, 선배들이었다.

함께 일한 기간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단지 <시사저널>에서 함께 지낸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한 형제, 한 가족 같았다. 그것이 또한 <시사저널>을 <시사저널>답게 만든 힘이자 원천이 아니었을까?

"<시사저널>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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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경영진이 직장폐쇄 조치를 통보하자 노조원들이 짐을 챙겨 편집국을 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 <시사저널>이 창간 18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저 '성장통'이라고 하기에는 그 병세가 너무 깊다. <시사저널>만의 진정성·동질성을 죽이고 있는 그 암종을 하루빨리 도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대수술이 필요하다.

<시사저널> 기자들만의 '희망', 살아야겠다는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의 언론계와 정치권, 뜻있는 시민 모두가 힘을 합쳐 칼을 들지 않으면 안된다.

"<시사저널>, 참 좋은 직장이었죠?"
"이 사람아, <시사저널>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장이야!"


오래전 한 만남에서 옛 선배가 한 이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도 동의한다.

<시사저널>이 이 역경을 이기고 끝끝내 살아남아, 내 기억 속에서 그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상현 #기고문 #시사저널 #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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