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와 우리나라는 역사는 물론 정치, 경제 분야에서도 닮은 점이 많다. 지정학적 요충지역이라는 이유로 외세의 지배를 많이 받았고 지도자의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 등이 그렇다.
별로 기억에 남기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97년의 외환 위기도 함께 경험했다.
당시 말레이시아도 자국 통화가치가 30% 가까이 곤두박질치면서 자국민뿐 아니라 말레이시아에 사는 외국인들도 힘든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안정된 통화라는 이유로 달러 대신 말레이시아 현지화로 급여를 받는 외국인들은 졸지에 봉급이 30%나 삭감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달러화로 급여를 받았는데,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급여가 50~100% 인상되는 효과를 보게 되었다. 당시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화장실 가서도 웃음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시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면서 겪는 말 못할 어려움은 많지만 그런 개인적인 사연은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에는 비슷한 시기에 어려움을 당한 두 나라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에 대해 전문가의 영역이 아닌 일반인 시각에서 본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말레이시아의 발전과정
@BRI@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2차대전 후 독립하였으나 말레이시아는 2차대전이 끝나고도 13년간이나 더 영국의 통치를 받다 1957년에서야 완전 독립을 하였다.
독립 후에도 '싱가포르', '브루나이'가 분리 독립해 나가는 등 정치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다 81년 마하티르 총리가 취임하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의사 출신으로 23년이나 총리직을 수행한 마하티르는 싱가포르의 리콴유(이광요) 수상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지도자이다.
그는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수립하여 서양의 발전모델을 따르기보다는 2차대전 후 급속하게 발전한 아시아의 두 나라 즉, '한국'과 '일본'을 성공의 모델로 삼았다.
지도자에게는 운도 따라야 하는지 마하티르 취임 후 넘쳐 나는 중동의 오일달러가 아시아의 이슬람 공동체인 말레이시아로 흘러 들어왔다. 또 85년에는 유례없던 엔고 현상으로 일본의 공장들은 앞다투어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된 말레이시아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런 시기를 이용하여 마하티르는 인프라를 확충하고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켰다. 사업 환경이 개선되자 유럽의 기업들까지 기후 좋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진출하면서 88년 이후 8%대의 고도성장을 기록하여 인근 여러 나라들과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여기까지도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한 발전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두 나라의 외환위기 극복방식
97년 외자에 의존하여 성장 기틀을 마련한 두 나라에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영향은 컸고 급기야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같았으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처방은 완전히 달랐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여 알고 있듯 한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IMF의 권고사항을 충실히 따랐다. 이 과정에서 금리를 올리고 부실은행과 기업을 합병 혹은 정리하여 인력감축을 통한 낭비를 막으려고 시도해 수많은 실업자가 양산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많은 기업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이후 아직까지 이름은 그대로이나 주인은 전혀 다른 회사들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 돌아보면 투자라고 보기 어려운 단기 적대적 기업합병(M&A) 자본이었음에도 당시에는 외국자본이 수혈된다는 소문만 있어도 주가가 오를 정도였다.
그러면 말레이시아는 어떻게 했는가?
말레이시아는 당시 외환위기를 투기자본에 의한 일시적 시장교란으로 보고 IMF의 권고사항을 과감하게 거부했다. 대신 자국에 들어와 있는 외환유출을 통제하고 외국에 나가 있는 자국통화를 회수하면서 고정환율제를 채택하는 등 경제전문가들이 모두 비웃는 대책을 세웠다.
한 가지 예로 마하티르 수상은 우리에게는 세계적인 투자가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를 "사악한 투기꾼"이라며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말레이시아에 발을 못 붙이도록 했다.
반면 당시 우리의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소로스와 화상회의를 개최함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할 적임자로 부각시켰고, 당선 후에도 별도로 자택에서 맞을 정도로 환대했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얘기다.
외환위기 후의 현실
어쨌든 금융위기 3-4년만에 IMF의 권고사항을 착실히 수행한 우리는 성공적으로 금융위기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와 상반된 처방을 쓴 말레이시아 또한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금융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했다.
우리의 경우 모두 알고 있듯 부동산가격의 폭등과 신용불량자의 급증, 거기에 엄청난 공적자금의 투입에 따른 재정손실 등 아직 많은 후유증이 남아 있다. 특히 당시 투입된 일부 외국자본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과다한 이익을 남겼다는 이유로 법정다툼을 하는 사례도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부동산가격이나 사치성 물가를 아직 금융위기 전의 70% 대에 붙잡아 두고 있다.
위에 든 예의 경우 일반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사연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복잡한 이런 문제는 제쳐 두고 외환 위기 당시 말레이시아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취한 인상적인 조치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외환위기를 당시 가장 먼저 고민을 시작한 사람은 유학생을 둔 학부형들이었을 것이다. 당시 폭등하는 환율에 유학비 마련이 어려워진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중도 귀국시켰고 교육청에서는 갑자기 늘어난 귀국 유학생 때문에 학교 배정에 고민해야 했다. 정부에서도 외환유출을 줄이기 위해 한시적으로 제도를 바꿔 가며 이 학생들을 국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접근 방식은 좀 달랐던 것 같다. 말레이시아는 자국학생들이 유학하는 나라에서 진출한 기업에 학생들이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현지 회사로도 보내고 본사로도 보냈다.
'유학생들이 당신 회사의 장학금을 받고 졸업하면 앞으로 당신네 회사에 취업하여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국가적으로도 좋은 이미지를 전할 홍보대사가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이런 정부의 노력으로 많은 유학생들이 여러 형태의 혜택을 받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유학한 학생들도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국가 위기를 당했을 때 서민들이 앞장서 '금모으기' 같은 활동을 통해 위기극복을 하고자 하는데 반해 말레이시아는 정부에서 서민들을 돕는 방안을 모색하는 듯했다. 이런 차이는 문제 인식부터 우리와 판이하게 다르고, 그 차이로 인해 국민들을 위한 긍정적 대책이 수립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양국의 앞으로의 과제
우리나라, 말레이시아 모두 아직 낮은 기술력과 생산성이 문제되고 있는데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하면서 큰 위협을 받고 있다. 거기에 인근 인도, 베트남, 태국까지 산업화에 눈을 돌려 공장을 유치하려 하자 외국기업은 물론 자국의 많은 기업까지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익을 찾아 보따리를 싸는 행렬은 계속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IT산업을 육성하여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또한 약화되는 수출경쟁력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이버자야 같은 정보통신단지를 조성하여 첨단기술을 유치하고 관광, 서비스산업 육성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으로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개발하고 계속 유입되는 중동의 오일달러를 활용하여 주택건설과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에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풍부한 팜오일을 이용하여 바이오산업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다시 10년이 흘렀을 때 두 나라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미래는 알 수가 없다. 만약 지난 10년 전 같은 위기가 다시 도래하여 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정책입안자들은 10년 전과는 달리 일반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대책을 최우선으로 수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내가 겪은 IMF 10년> 응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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