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개혁을 꿈꾸던 이들의 좌절기

[TV리뷰] '참여정치의 추억'

등록 2007.03.20 14:25수정 2007.03.3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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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의 정치이슈는 단연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이다. 인터넷 포털의 정치 관련 소식들은 온통 손학규 전 지사에게 몰려있다.

탈당 기자회견에서 그는 "우리 국민의 위대한 저력이 다시 활짝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다면 저는 어떠한 고통도 기꺼이 감수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기자회견문을 통해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조하겠다"고 결심을 밝혔다. 손 전 지사가 주장하고 있는 핵심은 '새로운 정치'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행보에 미디어의 관심이 쏠려있다. 손 전 지사가 서울을 떠났을 때 취재진들이 몰려들어 숨바꼭질을 했고, 탈당선언 기자회견장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대통령선거에 누가 출마하고 누가 당선되느냐는 뜨거운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선은 정치인들만의 잔치는 아니다. 시민들의 참여는 대선의 또다른 한 축이다.

개미들이 주역이었던 그때

KBS스페셜
지난 일요일 < KBS스페셜 >에서는 '참여정치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참여정치의 추억'은 2002년 당시, 일반 시민들도 이 나라의 정치에 목소리를 높이고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꾸었던 일들의 기록이다.

수구, 진보 가릴 것 없이 모든 정치인들이 내거는 주장은 '낡은 정치 타파, 새로운 정치 구현'이었다. 지난 2002년 '새로운 정치'를 목표로 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기성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치를 꿈꾸는 야심가들도 아니었다. 이들은 학원강사, 자영업자, 회사원로 일하는 동시에 생활 속의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고 생활정치의 꿈을 실현할 개혁당을 결성했다.

화면속의 개미들은 집회를 하거나 토론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족단위로 모여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축구교실을 여는 등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일상 속의 삶을 개선해 나가는 꿈을 꾸었다. 정치가에 속해서 돈받고 움직이는 당원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당비를 내고 신이 나서 움직였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유쾌한 반란은 '축제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개미들은 어떻게 좌절했나

KBS스페셜
2002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아무도 낙관하지 못했던 '노무현의 승리'의 밑거름에는 수많은 개미들이 있었고 조직화된 개혁당이 있었다. 당시 노 후보는 민주당에 앞서 개혁당사를 찾아와 인사했다. 승리의 기쁨은 개미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다. "세상을 다 바꿀 것 같았고 나를 다시 찾는 느낌이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찾아올 것 같은 벅찬 감격이 개미들에게 있었다. 이들은 더 큰 꿈을 꾸며 열린우리당으로 흡수되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4대 개혁법안'은 부분적으로 처리가 됐다고는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지리멸렬한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개미들의 정당을 꿈꾸던 한 여성당원은 기간당원제 폐지에 단식으로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개미들은 절망하고 흩어졌다.

열린우리당 기간당원제 폐지가 가결되던 날 한 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상향식 민주주의가 좌절된 것, 그것이 상당히 부끄럽습니다." 아무도 그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는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그의 열정 앞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신선한 소재, 하지만 2% 부족한 그 무엇

'참여정치의 추억'은 일반인의 시각으로 정치를 바라봤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프로그램은 개혁당 당원들에게 온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2007년 대선이 정치세력가들의 잔치 한마당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생각할 점을 던져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고 일하고 밥먹고 휴일에 쉬는 평범한 이들에게도 정치의 변화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려는 노력이 보인다. 냉소와 비난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점도 틈틈이 말해줬다.

'정치적으로 치우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한 대학생을 프로그램의 길잡이로 쓴 장치도 좋은 선택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개혁당이 왜 실패했는지를 조명하는 것이었지만, '개미들, 당신들 지금 어디 있나요'라고 불러보는 외침이었다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오버일까.

하지만 2% 부족한 것이 있으니 오디오 부분이다. 음악은 뜬끔없이 몽롱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주테마곡으로 썼는데, 실패했지만 실패로만 결론내릴 수 없는 참여정치의 추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부분에 쓰인 재즈풍의 배경음악은 내용의 흐름을 깨는 듯하다. 배경음악과 내레이션 간의 조절(믹싱)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두 번째로 내레이션이다. 프로그램을 끌어가는 길잡이가 스물다섯살의 대학생이라 목소리는 밝고 경쾌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길잡이의 나이가 아니라 내용이다. 내용과 맞춰 낮으면서도 생각의 깊이를 담은 목소리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길

'참여정치의 추억'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 KBS스페셜 >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평소보다 10배 정도 많은 시청자 글이 올라와있었다. 한쪽에서는 찬반양론 토론이 벌어지는 가운데 그때를 회고하는 개미들의 글들이 있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은 끝나지 않았음을 느낀다.

"소금은 녹아서야 제 역할을 하는 것, 어여쁘고 용감한 개미군단들아 그대들의 소금은 서서히 녹고있는 중이다. 그대들의 행동을 바보같은 역할을 했다고 과소평가 하지말라. 수천만톤의 위력을 가진 태풍도 그 진원지는 남미의 한 원시림에서 날아다니는 나비들의 작은 몸짓에서 시작되었으니…." - 시청자 ㅂ씨

"전 사실 정치에 관심없습니다. 그냥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짧은 인터뷰들, 구구절절 설명이 없었어도 그들의 눈빛을 보고 절망을 보고 희망을 보고. 모든 것들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채널을 고정해서 보았고요. 그리고 방송을 보는 내내 꿈,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요." - 시청자 ㄱ씨


앞으로 수많은 정치스타들이 나타나고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는 타협하고 누군가는 뛰쳐나가고 누군가는 새로운 세력을 형성할 것이다. 지나고 나면 하나의 드라마에 불과한 일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그들만의 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내년 선거는 우리들의 잔치라는 점을 잊지 말자. 어느 날 불쑥 개미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개미들은 힘이 세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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