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6·25 그날 기차도 울고 전우도 울었다

평택역, 전우의 시체를 싣고 달린 기관차

등록 2007.06.02 12:09수정 2007.06.0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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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 스무 살인 1949년 4월 25일 서울 양평동에 있는 야전포병단 수송중대에 자원입대해 미군트럭 G.M.C로 운전시험에 합격해 기술하사가 되었다.

아침이면 양평동 샛강에 나가 "양양한 앞길을 바라볼 때에…" 힘찬 군가를 부르며 발을 구른다.

어느 날이던가 육군 포병학교에서 하사관 서너 명이 나와 위생병을 희망하는 자는 손을 들라 하여 손을 들었더니, 나는 육군 포병학교로 가 검식을 담당하는 위생병이 되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부식을 검사하고 당시 일인당 하루 3천 칼로리가 되도록 칼로리 차트를 작성해 식사관에게 제출한다. 아침 일찍 취사장에 나가 내가 먼저 시식을 한 후 배식 명령을 내린다.

토요일이면 외출을 하고 다음 일요일 17시까지 귀대한다. 부대는 용산에 있고 내 집은 종로4가. 재미있는 병영 생활을 하고 있었다.

1년 후. 1950년 6월 24일 토요일이어서 외출을 하고 다음날 25일인 일요일은 서울 을지로4가에 있는 국도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극장 안이 밝게 불이 켜지고 스피커에서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군인들은 즉시 귀대하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영화상영은 중단되고 관객들은 무서움에 떨면서 밖으로 몰려나갔다.

나도 즉시 집으로 돌아가 어머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내 부대 포병학교를 향해 달려갔다. 라디오에서는 이미 피난을 떠나고 서울에 없는 이승만 대통령의 "곧 적을 물리칠 테니 안심하라"는 녹음된 방송만이 흐르고 있었다.

포병학교 의무대장은 출동하는 중대마다 위생병 두 명씩 배치하고 남은 나와 또 한 명의 병사 그리고 위생장교 이렇게 네 명은 구급차에 의약품을 싣고 집결지 평택으로 가기 위해 한강을 건넜다. 28일이던가 한강철교가 끊어지는 폭파음을 들었다.

평택까지 가는 동안 몇 번 북한군 비행기를 보았고 은신도 해 가면서 별일 없이 평택역에 도착했다. 수많은 국군들은 대구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별안간 시커먼 비행기 한 대가 날아들었다. 몇 번을 공중에서 선회하더니 독수리 먹이 사냥하듯 급강하하면서 국군이 타고 있는 열차를 향해 기총소사를 하는 게 아닌가.

비행기는 또다시 하늘로 올라 선회하더니 똑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열차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전우들의 울부짖음 그리고 전우들의 시체로 가득하다. 비행기가 하늘로 오르는 틈을 타 나는 깨어진 열차 창문을 뛰어넘어 열차 밑으로 숨었다.

비행기는 계속 내리꽂는데 이러다가 폭탄이라도 던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열차 밑에서 나와 민가가 있는 쪽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아니나다를까 그 비행기는 폭탄을 투하하고 말았다. 기관차가 폭파되고 뜨거운 수증기가 하늘에 올라 내려 떨어지면서 민가를 향해 뛰어가던 전우들의 얼굴에 닿아 피부가 벗겨지면서 울부짖는 전우들! 그리고 열차 계단에서 흘러내리는 죽은 전우들의 핏물은 무너진 둑에서 흘러내리는 빗물과도 같다.

수많은 죽음을 남기고 사라진 그 시커먼 무스탕은 북한 비행기가 아닌 한국을 도와 참전한 우군 비행기였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기관차를 바꿔 달고 전우의 시체를 싣고 대구를 향해 달리는 기적소리는 장송곡인양 전우들의 가슴을 울리고 기차도 울었다.

아! 6ㆍ25! 그날의 평택!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끔찍했던 전우들의 죽음과 장송곡 같은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리던 그 기차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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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 #평택역 #무스탕 #6·25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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