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를 그냥 울게 놔둬라"

등록 2007.06.21 11:56수정 2007.06.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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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여름이면 초가집마당에 멍석을 깔고 저녁을 먹고 누워 있다가 또 조금 출출해지면 감자도 구워 먹고 마늘도 구워 먹었다. 여름에 나오는 햇마늘은 대만 자르고 통째로 구워 먹으면 맵지도 않고 말랑말랑하니 달착지근하고 참 맛있었다.


멍석 위에서 여름을 즐기며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즐거웠지만 떼로 몰려드는 모기들은 우리들의 몸을 비비 꼬이게 만들었고 그 즈음에 동생과 나는 근처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쑥대를 뽑아서 마당 한쪽에 모은 뒤 모깃불을 피웠다. 일명 요즘의 모기향 역할을 하는 쑥 향이었다.

할머니 말로는 쑥 향이 진해서 모기들이 감히 오지 못한다고 하셨고 신기하게도 쑥대로 모깃불을 피우면 모기들이 달려들지 못했지만 사람도 매워서 모기를 잡는 건지 사람을 잡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밤마다 그렇게 모기와의 전쟁을 치렀다.

매워 죽겠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그 불 주위에 있어야 모기가 물지 않으니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저녁을 먹고 또 간식을 먹고 있을 그때쯤이면 어김없이 우리 집 담벼락을 붙들고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린 매운 모기향 때문에 울었지만 그 한 사람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보고픈 사람을 그리며 울고 있었다.

내가 7살 때, 엄마는 술을 마시고 집안일도 돌보지 않고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와 싸운 뒤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에 다시는 올 수 없는 하늘나라라는 곳으로 스스로 떠나셨다. 물론 나는 30년이 흐른 지금도 어린 아이 둘을 떼어 놓고 먼 길을 떠난 그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있다.

그래서 엄마의 무덤을 두 번 밖에 찾아가질 않았고 지금도 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내가 아이들을 낳아보니 엄마의 그 냉정함을 도저히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새끼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어린 새끼들을 두고 떠날 수 있었다니….


누군가는 그런 내게 자식은 감히 부모에게 용서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절대 용서가 되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인가.

젊은 딸이 죽자 외할머니는 정신을 놓고 며칠을 누워 계셨다. 사람들은 그런 외할머니를 보고 아예 미쳐버렸다고 수군거렸다. 그렇게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한동안 누워 계시던 할머니는 정신을 차리자 동네 두 개를 더 거쳐야 있는 우리 동네에 달빛을 머리에 이고 딸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가득 안고 밤이면 밤마다 찾아오셨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절룩거리는 다리로 2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를 밤이면 밤마다 오셔서 우리 집 담벼락에서 딸을 쏙 빼닮은 손자들을 보고 눈물만 흘리다가 가셨다. 낮에 오면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린다고 밤에만 찾아오시곤 했다.

그런 외할머니를 우린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아니, 아는 체를 할 수가 없었다. 집에 계시는 할머니는 딸을 잃은 사돈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시는지라 그렇게라도 손자들을 보고 마음을 달래시라고 우리에게 절대 할머니를 봐도 아는 체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와 동생을 보기만 하면 외할머니는 우리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휘영청 달빛은 어찌 그리 밝아 외할머니의 눈물까지 다 보이게 만들었을까. 나는 외할머니와 눈이 마주쳐도 외할머니를 부르지 못하고 딴청만 부렸다. 아이 둘을 낳아보니 젊은 딸을 보내고 그 딸을 닮은 손자들을 보며 미어졌을 외할머니의 가슴을 생각하면 세월이 많이 흘렀건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가슴도 미어진다.

속없는 모기는 귓전에서 윙윙대고 그럴수록 우린 쑥대를 더 뜯어와 모기향을 피우며 눈물을 흘렸고 외할머니는 한시도 나와 동생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담벼락을 잡고 서서 몇 시간째 울고 계셨다. 외할머니의 눈물을 외면하고 돌아서서 집에 계신 할머니도 치맛자락에 눈물을 훔치시기는 매한가지였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버지는 그런 두 할머니에게 소릴 지르며 청승을 떤다고 고래고래 소릴 질렀고 우린 아무도 그런 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외할머니는 담벼락에 서서 '그대로 멈춰라'를 고집했고 우리도 모깃불 주위에 둘러앉아 '그대로 멈춰라'를 고수했다.

세월이 흘러, 술을 마시고 술주정을 하시던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를 자식이라고 품에 안아주시던 할머니도, 딸을 가슴에 묻고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던 외할머니도 모두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요즘은 모기향이 종류도 여러 가지로 잘 나와 있다. 모기향을 피울 때마다 전라남도 진도 시골 촌구석 우리 초가집이 간절하게 그리워지고 힘든 세월을 함께 보냈던 내 가족들이 그립고 또 그리워 모기향이 독하다는 핑계를 대며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눈물을 흘린다.

덧붙이는 글 |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

덧붙이는 글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
#모기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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