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애앵~~ 새벽마다 울리는 공습경보

어릴 적 TV는 못보고 모기에게 헌혈만 했다

등록 2007.06.22 11:25수정 2007.06.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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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애앵∼∼∼∼∼∼∼∼∼∼


새벽녘 귓가에서 이 소리가 들리면 무의식중에 자기 뺨을 안 때려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몇 번은 귀찮아서 그렇게 자기 뺨만 때리다가 잠들만하면 애애앵∼∼∼. 또 잠들만하면 애애앵∼∼∼. 더는 참을 수 없어 급기야 불을 켜고 만다.

'모기 너 이놈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악문 입술에는 살기가 등등하다. 훤해진 불빛에 깜짝 놀란 모기는 어디로 날지 몰라 허둥대고, 나는 왜 갑자기 모기에게 윙크를 하고 있나? 불빛에 눈이 부신 내 눈이 자꾸 찡그려지니 내가 때려잡아야 할 모기에게 윙크하는 꼴이 아니고 무어겠는가?

미련 곰탱이 같은 놈. 내 찡그려진 눈이 정말 저에게 보내는 윙크인 줄 아는지, 하얀 벽 위에 슬쩍 궁둥이를 들이밀며 까만 점으로 앉는다. '너 이놈 내 피 다 빨아먹고 만삭이니 몸이 무거워 멀리 날지도 못하겠지?'

내 손바닥이 괜히 크고 넓은 줄 아느냐! 어릴 때 땅뺏기를 할 때는 친구들 중에서 내 뼘이 가장 컸고, 공기놀이를 할 때도 내 큰 손에 잡혀 들어오는 공깃돌이 마치 한 움큼씩 물건을 집어 올리는 집게 차 같았다. 나는 모기를 끝까지 교란시키기 위해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소탕작전에 돌입한다. 새벽녘 모기는 대부분 몸이 무겁다.

귓가에서 앵앵거리며 내 금쪽같은 피를 다 빨아 먹었으니 굼뜬 행동이 나무늘보 같다. 대략 벽을 한 번 쓰∼윽 훑으면 놈을 발견할 수가 있다. 탁∼∼ 소리와 함께 하얀 벽에는 선혈이 낭자하다.


주인님 고이 주무실 제 긴 대침 꽂아 허락 없이 피 빨아 먹은 죄. 귓가에서 앵앵거리며 한창 사랑에 빠진 달콤한 꿈에 재 팍팍 뿌린 죄. 모기가 처형당할 수밖에 없는 죄목은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이다.

그 옛날 집집이 거름더미가 쌓인 시골의 모기는 더욱 극성이었다. 100여 호가 사는 마을에서 사과밭 집인 경진이 오빠네에 TV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저녁이면 사과밭과 이어진 넓은 마당에는 멍석과 평상이 놓이고 신기한 텔레비전을 구경하기 위한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각 모서리에 하나씩 네 개의 다리가 있고 주름상자처럼 양 옆으로 여닫는 문이 달린 밤색 TV는 대청마루에 놓였다. 경진이 오빠 집은 사과나무에 뿌려진 거름(퇴비) 때문인지 유난히 모기가 크고 많았다.

그 시커먼 놈들이 한 방 물었다 하면 대추만한 혹들이 툭툭 불거졌다. 마당 한쪽에 피워둔 모깃불도 소용이 없었다. 모깃불 주위로는 어른들이 둘러앉고 조무래기인 우리는 마당 한구석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쪽에는 커다란 함지박에 물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그것도 모기와 나방들을 잡기 위한 한 방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심청인 줄 착각한 바보 같은 모기와 나방들은 그곳이 인당수인 줄 알고 다이빙을 해댔다.

여기에서 철썩, 저기에서 철썩, 소리만 들으면 꼭 누가 누구를 때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모기를 쫓기 위한 자기 학대였다.

마당 끝으로 밀려나 달려드는 모기와 싸움만 하고 있는 조무래기들이 소리도 잘 안 들리는 연속극을 얼마나 이해하겠는가? 그저 움직이는 그림만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지….

그러나 개중에는 자기가 뭘 좀 아는 것처럼 "야 임마, 조용히 좀 해라. 니 땜에 항개도 안 들린다 아이가" 하며 옆에서 부스럭거린 아이에게 시비를 건다.

"내가 뭐라 캤는데? 니나 조용해라 임마." 저는 아무 짓도 안 한 것 같은데 옆에 놈이 시끄럽다고 하니 욕먹은 놈이 화가 났다. 니가 잘 했네, 내가 잘 했네 떠들어대다가, "저노무 손들(저 놈의 자슥들) 시끄러버 죽겄다. 텔레비 안 볼라카마 너거 집에 가거라" 하는, 목소리가 큰 종구 아지매에게 욕을 먹었다.

다음날이었다. 조무래기들은 저녁을 먹고 또 경진이 오빠 집으로 TV를 보러 갔다. 그러나 초저녁이 무색하게 대문은 굳게 닫혔다. 전날 떠들어대던 조무래기들은 이제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 같았다. 어른들만 슬금슬금 들여보내고 있었다.

"와! 테레비 안 비 준다 카더나?(왜 텔레비젼 안 보여 준다고 했나?)" 헐레벌떡 달려온 성필이(가명) 오빠가 물었다.

"어른들은 들어가는데 우리만 안 된다칸다." 옆에 있는 규식이(가명) 오빠가 말을 받았다.

"그라마 우리 단체로 테레비 비 달라꼬 소리 함 치보자." 성필이 오빠의 제안에 대문 앞에 모인 조무래기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단체 시위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테레비 좀 비 주이소(텔레비젼 좀 보여주세요) 카는기다 알았제?"

조무래기들은 성필이 오빠의 구호에 맞추어 합창을 했다.

"테레비 좀 비 주이소. 테레비 좀 비 주이소."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어찌 그리 자기 음역들을 잘 아는지, 화음도 멋지다. 조무래기들은 또 합창을 했다.

"테레비 좀 비 주이소. 테레비 좀 비 주이소."

그러나 굳게 닫힌 대문은 열릴 줄 모르고 괜스레 사과나무 밑에 잠자던 모기들만 깨워 우유도, 초코파이도, 주지 않는 쓸데없는 헌혈만 실컷 하고 왔다. 온몸이 자갈밭처럼 울퉁불퉁했다.

덧붙이는 글 |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에 응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에 응모합니다.
#모기 #여름의 불청객 #모깃불 #공습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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